조지훈 선생의 일화

by phobbi posted Mar 03, 2026 Views 77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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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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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3. 03.

 

정한숙 선생님이 언젠가 나에게 기발한 조지훈론을 들려준 적이 있다.

 

“6.25 전쟁이 터지고 모두 남하를 했을 때 우리 고려대학도 피난을 갔지. 대구 교외의 어느 집 마루에서 술 좋아하는 교수 몇 명이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어. 마침 바둑판이 있어서 바둑을 두면서 말이야. 이 얘기 저 얘기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따발총을 멘 인민군 병사 두 명이 쓰윽 마당으로 들어오는 거야. 우리는 그곳이 인민군 점령지역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어. 우리는 모두 가슴이 섬뜩했지. 뭐가 어떻게 돌발할지 모르는 상황이야.

 

그때 갑자기 조지훈이 일어나더니 사발에 막걸리를 부으면서, ‘동무, 한 잔 하라우. 우린 대학교 선생님들이야, 좀 쉬고 있었지.’

 

생각할 틈도 없이 들이미는 막걸리잔을 받아든 인민군병사가 목이 몹시 말랐는지, 먼저 인사를 드리고 꿀꺽꿀꺽 마시는 게야. 두 명이 다 마셨지. 자세히 보니 10대 소년들인데 뼈대가 있는 자손들 같았어. ‘대학교 선생이라는 말에 그냥 고개가 숙여진 것이겠지. 일상도덕에 남·북이 어디 있겠나? 조지훈은 순간의 재치와 담력이 이와 같았어. 큰 인물이었지!”

 

김용옥 지음,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 1>(통나무, 2024. 10. 30.),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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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순간의 장면이,

어떤 행동이 그 사람의 전체를 보여 줄 때가 있다.

특히 위급한 상황을 타개하는 말과 행동은 더 더욱 그러하다.

그럴 때일수록 꾸밀 수 없는 본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고대 국문과 정한숙 선생이 들려주는 조지훈 선생의 면모는

고난의 시대를 살다 간 어른들의 그릇이 어떠하였는가를 가감 없이 드러내 준다.

외부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인격을 갈고닦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인격을 기르는데, 훌륭한 선생님, 좋은 이들을 만나는 행운만큼이나 귀한 것은 없다.

 

- 향린 목회 48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