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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3.1 민주구국선언 50주기를 맞아

by phobbi posted Mar 01, 2026 Views 45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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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01

2026. 03. 01.

 

민주구국선언

 

오늘로 삼일절 쉰일곱 돌을 맞으면서 우리는 191931일 전 세계에 울려 퍼지던 이 민족의 함성, 자주독립을 부르짖던 그 아우성이 쟁쟁히 울려와서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구국 선열들의 피를 땅에 묻어 버리는 죄가 되는 것 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구국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8.15해방의 부푼 희망을 부수어 버린 국토 분단의 비극은 이 민족에게 거듭되는 시련을 안겨 주었지만 이 민족은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6.25동란의 피해를 딛고 일어섰고, 4.19학생의거로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슴 가슴에 회생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 민족은 또다시 독재정권의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 삼권분립은 허울만 남고 말았다. 국가안보라는 구실 아래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날로 위축되어 가고 언론의 자유와 학원의 자주성은 압살당하고 말았다.

 

현 정권 아래서 체결된 한일협정은 이 나라의 경제를 일본경제에 완전히 예속시켜 모든 산업과 노동력을 일본경제침략의 희생제물로 만들어 버렸다.

 

눈을 국외로 돌려보면 대한민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보기도 초라한 고아가 되고 말았다. 한반도에서 유엔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말도 이제는 지난날의 신화가 되고 말았다. ·서양 진영 사이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고 세계사에 새 힘으로 대두한 제3세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서방세계만 의존하다가 서방세계에마저 버림을 받고 말았다.

 

현 정권은 이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국내의 비판적인 민주세력을 탄압하다가 민주국가들의 신임을 잃게 된 것을 통탄해야 한다. 3세계의 대두와 함께 유엔이 변질되었다는 것을 탓하기 전에 긴 안목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내다보지 못한 것을 스스로 탓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비원인 민족통일을 향해서 국내외로 민주세력을 키우고 규합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전진해야 할 이 마당에 이 나라는 일인 독재 아래 인권은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이리하여 이 민족은 목적의식과 방향감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총파국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우리는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여야의 정치적인 전략이나 이해를 넘어 이 나라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민주구국선언을 선포하는 바이다.

 

김창희 엮음, <민청학련 50주년에 다시 듣는 세상을 바꾼 목소리들>(한울엠플러스, 2024. 10. 24.) 2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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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오늘 함석헌, 윤보선, 정일형, 김대중, 윤반웅, 안병무, 이문영, 서남동, 문동환, 이우정의 이름이 서명된 민주구국선언서가 명동성당에서 낭독된다.

 

이 문서는 김대중이 준비하던 선언서, 문익환이 준비하던 선언서의 양 흐름이 한데 모아지고, 더 강경한 의지를 표명한 문익환의 선언서를 중심으로 최종 226일 완성되었고, 문익환의 장남 문호근에 의해 타자기로 타이핑되었고, 타이핑 된 선언서가 27일 한빛교회에서 이해동 목사에 의해 60부 등사되어 파지 5부를 제외한 55부가 나중에 명동성당 현장에서 유포되었다. 서명자에 이 문서의 초안자 문익환 목사가 빠지게 된 것은 당시 마무리 단계에 있던 성서의 공동번역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선언서 낭독을 위한 장소를 확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문익환은 목요기도회에 참석한 김지하의 어머니로부터 31일 명동성당에서 3.1절 기념미사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고, 227일 문 목사는 신현봉 신부를 만나 선언서를 전달하고, 3.1절 미사에서 문서 발표가 가능한지를 논의한 후, 28일 함세웅 신부 등과 함께 모여 명동성당에서 일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미사는 사회 장덕필 신부, 강론 김승훈 신부가 담당해 진행되었으며, 미사에 이어 문동환 목사가 설교를 하고, 다음으로 문정현 신부가 김지하 시인 모친의 편지를 대독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마무리 기도 시간에 이우정 교수가 나와 7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선언서를 낭독했다. 참가자들은 모든 순서를 마치고 밤 945분에 조용히 해산 귀가했으나, 당일 자정 이우정의 연행을 시작으로 8일까지 문동환, 윤반웅, 이문영, 안병무, 서남동, 은명기, 문익환, 이해동, 이종옥(이해동 부인), 문호근, 김석중(이문영 부인), 이태영, 함세웅, 김승훈, 김대중, 이희호(김대중 부인), 정일형이 연행되었으며 9일에는 윤보선이 면담 조사를 받았다. 10일에 검찰은 3.1사건을 일부 재야인사들에 의한 정부 전복 사건으로 발표하고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20여명을 입건했다고 공표하였다.

 

오늘날 이땅의 민주주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3.1 독립운동 저항의 외침은 유신 독재와 맞서는 힘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결국 촛불과 응원봉으로 계속 나아가게 한 것이다.

 

내란의 밤을 막아낸 지금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란 국가의 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책임을 지고,

진지하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할 때만이 온전해진다.

지난 이 땅의 역사는 바로 이런 깨달음들을 얻기 위한 온고의 세월이었던 것이다.

 

- 향린 목회 48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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