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28.
‘세상이 살기 좋아진다’는 것은 진리의 문제를 잊은 채 어영부영 배불리 먹고 평온히 지낸다는 뜻이 아니다. 진리를 단 한 사람에게 일임하는 대신 모두가 진위의 판단에 관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결과 누구나 비교적 진지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그만큼 인류 전체의 지적 역량은 전체적으로 활성화된다는 뜻이다. ‘진리만을 말하는 소수’를 예외적으로 우대하는 것보다, ‘틀린 말을 하는 압도적 다수’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자각할 기회’를 보장하는 편이 인류라는 종 전체의 총합을 따져 보면 플러스가 된다는 뜻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공공의 장이 마련되면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내 주장이 옳다고 큰소리로 외치기’를 삼가고, ‘내가 하는 일을 그 일을 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애쓰게 된다. 내 경험에 비춰 보면, 자기주장에 확신이 있는 사람은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지의 사실인데’라든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같은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이 바로 그런 부류다. 반면, 자신의 ‘옳음’을 인정해 줄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얻고 싶은 사람은 성심성의껏 말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가능한 모든 수사를 동원하며, 온갖 다채로운 비유를 펼쳐 가며 어떻게든 이해를 구하려 애쓴다. 매달리듯, 간청하듯 말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언론이 오가는 장의 판단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있는 청중의 지성을 신뢰하고, 그들의 판단력에 경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커먼즈의 재생: 공공, 환대, 관용은 어떻게 회복되는가?>(도서출판 유유, 2026. 2. 14. 초판 1쇄 발행), 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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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회에 대한 다쓰루 선생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좋은 사회가 되려면 전체 구성원의 민주적 의식이 높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주장에 대해 충분한 근거를 대며 차분히 설명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근거 없이 주장만 펼치며 고집부리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보통 근거 없이 자기주장만을 펼치는 사람은 공동체에 대한 신뢰나 기여 없이,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이들의 태도는 보통 가르치려 들고, 상대를 무시한다.
상대의 상황이나 관심사, 그의 삶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다.
설사 고차원적인 지식이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 사람의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함께 사는 세상이 되려면 자기주장에 대한 확실성보다,
그 주장이 왜 확실한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 향린 목회 48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