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25.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수도 생활의 외적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수도 생활의 근본적인 동기는 물질의 포기보다는 사랑을 가능케 하는 마음의 태도를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도 생활은 사랑의 훈련이었고, 훈련하는 마음의 태도는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어느 날 압바 마카리우스가 종려나무 잎들을 짊어지고 늪지에서 자기 처소로 돌아가던 중, 길에서 긴 낫을 들고 있는 악마를 만났다. 악마는 그를 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악마가 그에게 말했다. ‘마카리우스, 도대체 너의 능력이 무엇이기에 너에게 맞서는 나를 무력하게 하느냐? 나도 네가 하는 모든 것을 한다. 나도 너처럼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나도 너처럼 전혀 잠을 자지 않는다. 네가 나를 뛰어넘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압바 마카리우스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악마가 말했다. ‘너의 겸손이다. 너의 겸손이 나를 무력하게 한다.’”(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Macarius 11, 130)
실로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금식을 하는 일, 욕구를 끊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악마도 그런 일에는 능숙합니다. 그렇기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표식은 포기나 영웅적인 미덕, 선행이 아니라 겸손이었습니다.
“압바 안토니우스는 원수가 세상에 퍼뜨린 올가미들을 보고 탄식하며 물었다. ‘아, 이 올가미들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한 음성이 들렸다. ‘겸손하라’” (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Anthony 7, 2.)
로버타 본디 지음/황윤하 옮김, <주께서 사랑하시듯 사랑하라: 초기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비아, 2023. 4. 28.), 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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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훈련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하나님만을 뵐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거나, 남을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웅적 감정이나
비교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것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 향린 목회 479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