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24.
내 실패와 아랑곳없이 잔디는 어느때처럼 푸르고, 잔디처럼 아직은 살아 있는 내 몸을 확인하게 된다. 사철 움츠리고 있는 자신이 조금은 싱겁게 느껴지고, 뺨맞은 오랜 후에 슬그머니 화가 오르는 것처럼 그는 실패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과, 잘났건 못났건 모두를 ‘내 탓’으로 치고 싶은 회오와 기쁨이 슬그머니 치민다. 인간은 이렇게 사회나 문명의 질서와 상관없이 언제나 유유히 흐르는 구름을 내 몸인 양 느끼는 날 이상한 태평감과 힘에 젖는 것이다. 그는 지배할 사람이 없어도 심심치 않고,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웃을 게 있고, 재간이 별반 없어도 고마워할 거리가 있는 지평에 눈이 뜨고, 잘났건 못났건 “나는 나”라고 우주를 향해 선언하게 된다. 이런 이는 바야흐로 “자기가 되는 출구”에 가까이 서 있는 것이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들이 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시인은 고기잡이에 허탕을 쳤음에도 실패를 빗겨가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뿌듯해진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특별한 한 사람에게 돌려보자.
그의 일생은 철저한 실패로 관통된다. 쫓던 무리 모래에 물빠지듯 사라지고, 길러 놓은 작은 무리 뿔뿔이 흩어지고, 그 가운데서도 뼈아픈 변절을 통하여 나무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처절한 물거품의 정점에서 “다 이루었노라”고 선언을 하고 눈을 감는다. 허탕치고 돌아가는 그의 인생의 배에 휘영찬 달빛이 그득한 것을 보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살아 생전에 남이 안 보는 골방에 들어갈 것을 가르치셨고 사람들이 왕으로 세우려고 할 때 홀연히 숨어버리시더니 끝내는 구름 속으로 사라져 무궁한 자유에 들어가셨다. 이를 부활이라 한다.
곽노순 지음, <예수현상학>(다산글방, 1991. 12. 1. 초판 발행), 178-179.
======================================
사람들은 성취와 성공을 늘 바라지만,
무엇보다 실패할 줄 알아야 한다.
실패하고 실패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실패 한 가운데서도 다 이루었다고 말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행위도 중요하지만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 향린 목회 47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