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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기독교적 희망

by phobbi posted Feb 22, 2026 Views 15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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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2-22

2026. 02. 22.

 

기독교적 희망은 행위의 내재적 측면이 아니라 믿음의 초월적 측면에 있다. 신학 박사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희망의 신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의 희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의한 만물의 새 창조, 궁극적인 새로움(novum ultimum)을 향해 있다. 따라서 이 희망은 죽음까지도 포괄하는 미래 지평을 열어낸다.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다른 희망들을 각성시키고, 상대화하고, 정돈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기독교적 희망은 무활동 수동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행위의 환상을 자극하여 낡은 것으로부터 깨어나 새로운 것으로 적응하는’ ‘창발력을 일깨워 줌으로써 행위할 동력을 제공한다. 세상을 피하려 하지 않고 미래에 열광적이다. 정적(靜寂)주의적(quietistisch) 물러섬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corinquietum)’이 이러한 희망의 본질이다. 세상은 희망 안에서 과장되거나 축소되지 않는다. 희망은 오히려 세상이 가진 모든 부정성에 맞서 대항한다. 그렇게 희망은 혁명의 정신을 키운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교적 희망은 항상 그것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동체의 정신사(精神史)에서 혁명적으로 작용했다.” 희망의 정신에는 행위할 결단이 내재해 있다. 희망하는 이는 새로운 것, 궁극적인 새로움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희망은 새로운 삶으로의 도약을 감행하게 한다.

 

한병철 지음/최지수 옮김, <불안사회>(다산북스, 2024. 11. 28.) 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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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마음이 희망의 본질인 이유는

불안의 다른 이름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선택은 언제나 다른 것의 포기이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이자 모험이다.

따라서 선택할 자유는 언제나 불안을 야기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하이데거가 말한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던져져서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선택하며 불안을 느끼는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부름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하이데거의 불안이 신앙 안에서 희망이 된다.

희망하는 자는 던져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던진다.

불안이 아니라 약속이 주는 희망 안에서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47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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