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18.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형제인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장 작은 이들, 주변부에 있는 이들 또한 교회 주변부에 있는 이들,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으로뿐 아니라 모든 곤경에 처한 이들, - 단순히 육체만이 아니라 - 상처 입은 이들이 성부께로 곧장 이어진 확실하고 유일하며 상대화할 수 없는 길을 제시한다. 그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 안에서 예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그리고 생명으로 지금 여기에 현존한다.
인간이 고통받는 곳에 예수가 있다. 우리 주위 도처에 있는 그들은, 그리고 그들 안에서 예수는 ‘기회’이며, 성부께 가는 열린 문과 같다. 그런데 예수가 없는 곳이 있는가? 예수가 없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스스로를 정의롭고 선지자라 여기는 사람들, 다른 이들을 배척하고 예수의 말씀으로 문 앞에 차단기를 세우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들어가는 대신 다른 이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부들부들 떨며 문 앞을 지키고 있다. 이런 이들 곁에, 이들 안에 예수는 없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예수의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우리는 예수의 역할을 결코 상대화하지 않을 것이고, 결코 그분의 독점적 권리를 약화 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예측 불가한 군중 속 익명의 대열에 밀어 넣지도 않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그의 충만함 안에서 그가 우리에게 가리키고 주었던 모든 것과 함께 그를 따른다. 바로 이 충만함 속에 그의 유일성의 신비가 있다. 이는 그의 유일성이 그가 성부와 이루는 유일한 친교의 신비에 있는 것과 같다.
토마시 할리크/오민환 옮김, <상처 입은 신앙>(분도출판사, 2018. 7. 5.),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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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외치는 이들 속에는 종종 예수가 계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예수 당시 바리새파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진실한 신앙으로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남발한다면
거기 어디에 예수께서 계시겠는가?
오히려 그렇게 혐오의 언어로 핍박을 받고 있는 이들 곁에 예수가 계실 것이다.
그전에도 예수는 바로 그런 이들과 함께 계셨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드러난다.
우리의 신념이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 향린 목회 47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