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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흩으시는 하나님

by phobbi posted Feb 15, 2026 Views 18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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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2-15

2026. 02. 15.

 

우리는 흔히 창세기 1-11장을 원역사’(原歷史)라 부릅니다. 창조, 타락, 홍수 그리고 바벨탑까지 이어지는 이 흐름은 이후 아브라함의 등장을 준비하는 거대한 서사의 토대로 이해됩니다. 전통적 해석은 이 서사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창조하셨지만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타락했고, 타락은 점점 깊어져 홍수로 심판을 받았고, 홍수 이후 다시 기회를 얻은 인류는 결국 바벨탑에서 또다시 교만을 드러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인류 전체를 버리고 단 한 사람(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

 

이 흐름 속에서 바벨탑은 붕괴의 마지막 지점이며, 아브라함은 선민의 시작점이 됩니다. 그러나 이 해석에 의문이 생깁니다. 바벨탑은 하나님의 포기와 단절의 사건일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충성한 유일한 인물이었기에 선택된 것일까요?

 

제가 볼 때 전환의 지점은 바벨탑이 아니라 홍수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통해 제2의 창조를 시작하셨고, 창조 명령은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9:1, 7)

 

바벨탑 사건은 실패의 절정이 아니라 창조 명령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저항을 보여주는 한 장면일 뿐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흩어짐을 두려워했고, 하나의 언어와 문화로 단단히 뭉치기 위해 도시를 만들고 탑을 쌓았습니다. 그것은 창조 명령을 정지시키는 시도였고, 하나님은 단일 언어를 섞으심으로써 창조의 흐름을 다시 열어가신 것입니다.

 

송민원 지음,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복있는 사람, 2025. 11. 4. 초판 2쇄 발행), 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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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사건을 보는 송민원 박사의 새로운 관점이다.

흥미롭다.

바벨탑 사건이 하나님의 재창조에 대한 소수 사람의 저항이라면

아브라함의 등장은 하나님의 재창조를 이어가는 또 다른 소수의 등장일 수 있겠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삶,

모든 생명체가 자기 몫을 누리며 풍성하게 사는 삶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려면 한곳에 안주하여 자기 성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떠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떠나는 사람이 가벼운 것처럼,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함께 살려면 나눠야 하고, 자기의 것을 덜어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벨탑 사건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일 언어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그것으로 자기 권력을 누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흩으셨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다양한 목소리,

다양한 언어들이 자유롭게 발화되고 있는지,

한목소리로 모아야 할 때에도 소외되는 이들은 없는지,

공통의 관심사 때문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소수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잠재워지는 것은 아닌지 늘 살펴야 할 것이다.

 

- 향린 목회 46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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