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언약궤 위에서 너를 만나겠다
그룹들은 날개를 위로 펴서 그 날개로 속죄판을 덮게 하고, 그룹의 얼굴들은 속죄판 쪽으로 서로 마주보게 하여라. 너는 그 속죄판을 궤 위에 얹고, 궤 안에는 내가 너에게 줄 증거판을 넣어 두어라. 내가 거기에서 너를 만나겠다. 내가 속죄판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할 모든 말을 너에게 일러 주겠다.(출애 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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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을 짓고 거기에 둘 모든 종교적 기구들을 만드는데 제일 먼저 만드는 것은 언약궤입니다. 언약궤는 눈에 보이시지 않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눈에 드러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장로들이 실로에 있던 언약궤를 가져오자고 제안한 이야기(삼상 4:1-8)가 바로 이런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언약궤는 메고 다닐 수 있도록 제작된 상자로서 그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돌판(증거판)을 넣어두었고, 겉은 금으로 입혔습니다. 속죄판은 언약궤를 덮는 판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발등상의 형상으로 여겨졌고, 두 파수꾼(그룹)이 이를 지킵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과 상황 속에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임재합니다. 산 위에서, 구름에 둘러싸여서, 때로 불기둥으로, 어떤 때는 세미한 음성으로 백성들 한복판으로 찾아오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약속,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십계명을 보관하는 언약궤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저마다의 자리에서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질병의 치유, 기적의 체험, 예기치 않은 성공과 곤경에서의 구원 등.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첫 번째 자리는 하나님과 자신의 약속,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긴 율법의 한복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이유는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가 높은 윤리적 이상을 담보하지 않고, 천박한 욕망 투영의 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는 언약궤를 지키는 두 그룹이 속죄판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고, 그 둘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실 말씀들을 일러주겠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속 깊은 뜻이 담긴 십계명과 율법이 실천되고 하나님과 신앙의 백성이 굳게 지키기로 약속한 자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이 주님의 계명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자본주의 욕망과 권력을 탐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약속이 신실하게 지켜지는 높은 윤리적 이상이 실천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