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기다림의 능력
모세가 산에 오르니, 구름이 산을 덮었다. 주님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엿새 동안 구름이 산을 뒤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는 주님의 영광이 마치 산꼭대기에서 타오르는 불처럼 보였다. 모세는 구름 가운데를 지나, 산 위로 올라가서, 밤낮 사십일을 그 산에 머물렀다. (출애 24: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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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파악 불가능성을 한평생 참아내는 것”이라고 말했고, 현재 21세기 미국 최고의 개신교 신학자라 불리는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출애굽 백성이 계약을 맺은 후 모세는 시내 산에 오르고 산은 구름으로 덮입니다.
모세는 거기에서 밤낮 사십일을 보내는데, 남겨진 백성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산에 오른 모세 또한 육일을 기다린 후에 이렛날이 되는 날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것도 주님의 얼굴을 직접 뵙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 가운데서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구름은 야훼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을 감추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모세 또한 하나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래 남아 있는 백성들은 멀리 산꼭대기를 덮은 구름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마치 타오르는 불과 같이 여깁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모습은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직접 명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없습니다. 상징에는 뜻이 있고, 상징은 다양한 해석 가능성에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명약관화하여 명석판명하게 분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매모호하고 경계도 불분명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세계 속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모호하고 불확실한 뜻을 기다리고 해석하고 견디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특별히 부르심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시게 하시는 존재 그 자체와 구별하지 못하고, 너무도 쉽게 보이고 만져지는 것으로 환원할 때 믿음은 타락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고 거기로부터 무엇인가 깨달으려면 기다리고 머물며 안으로 깊이 새길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모세는 40 주야를 머무릅니다. 성령 체험을 하고도 광야에서 40 주야를 머무른(마태 4:2) 예수님도 이 전통을 이어갑니다. 충분히 무르익기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기다림의 능력을 주소서. 믿음은 인내할 줄 아는 것에서부터 익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소서. 너무나 빠르게 판단하고 섣부른 행동은 늘 경계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에게도 40 주야의 그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는 능력을 허락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