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10.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소세키, 베버, 제임스 등 당시 최고의 지성이었던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해 한 말을 읽고 거기에 담긴 것을 보면 저는 새삼 감동을 받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잠언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지요.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인류의 미래, 세계의 행방 같은 것은 애초에 그들의 개인적인 행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인생을 만족하며 살아갔어도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정신이 파탄 나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유별난 정열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그 이유를 생각할 때 자꾸 제 머리를 스치는 것은 ‘거듭나기’(twice born)라는 말입니다. ‘거듭나기’는 제임스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중요한 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을 헤맬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빠져나간 지경에 도달하고 세계의 새로운 가치라든가 그때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포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건전한 마음’으로 보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보다는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다시 사는 ‘거듭나기’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도 합니다. “한 번 태어난 사람의 종교는 ‘일종의 직선적인 것’이고 ‘단층 건물’이다. 이에 비해 거듭난 사람의 종교는 ‘이층 건물의 신비’다”라고 말이지요. 이러한 사고는 지금까지의 행복과 고난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재검토하게 하는 것으로서 주목해야 합니다.
강상중 지음/송태욱 옮김, <살아야 하는 이유>(사계절출판사, 2012. 12. 7. 1판 5쇄), 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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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을 ‘병든 영혼’의 소유자와 ‘건전한 마음’의 소유자로 나눈다. ‘병든 영혼’의 소유자는 현재 주어진 인생에서는 도저히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이 인생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가지며, 인간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늘 마음의 문제로 삼는다. 그에게는 이 인생만이 인간 생명의 전부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생활을 어떻게 영위할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로 생각되지 않는다. 이 삶 너머에서 이상의 세계를 찾아내려고 한다. 미래에는 더욱 빛나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거듭나기’라고도 부른다. 다음 세상에 다시 한번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건전한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현재 시시각각의 생활이 삶의 보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날그날이 즐겁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직접적으로 가치를 갖고 있다. 인생에 대하여 마음을 도려내는 듯한 심각한 의문은 나오지 않는다.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만하다. 이 인생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므로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어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은 완전히 ‘병든 영혼’형이었다. 뭔가 맨날 심각했다.
인생의 의미 문제를 두고,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를 두고 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종교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서 살다 보니 이제는 ‘건전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간다.
그날로 족하다. 순간을 잘 살면 그뿐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흥미를 잃은 지는 오래되었고,
요즘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비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거룩하게 보인다.
과거는 기억된 현재이고, 미래는 기대되는 현재이니,
나는 그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면 그뿐이다.
- 향린 목회 464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