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변증법

by phobbi posted Feb 07, 2026 Views 28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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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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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07.

 

오직 아픔을 통해서만 세계에, 아름다움에, 또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 세계의 아름다움은 아픔을 통하여 몸속으로 파고든다. 아픔이 없으면 우리는 세계를 상실하고 존재를 망각하게 된다. 실재는 아픔을 매개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고 우리의 장부에 자신을 등록한다. “우리가 아픔을 겪을 때면 언제나 다음과 같이 진실을 말해도 된다. 우리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은 우주, 세계 질서, 세계의 아름다움, 신 앞에서 피조물의 순종이다. 이 선물을 우리에게 주는 사랑에 더없이 상량하게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불행과 아픔의 부정성이 우리의 의지를 꺾고 순종을 가르친다. 그 부정성이 물질을 특징짓는 수동성을 우리에게 전수한다. “신의 창조는 좋다는 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사명이다. 우리 주위의 상황이 우리의 삶을 반쯤은 온전히 놔둘 때, 즉 반쯤만 침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세계를 창조했고 지배한다고 어느 정도 믿는다. 그러나 불행은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별안간 일깨워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그때 우리가 불행을 찬양한다면, 신의 창조를 정말로 찬양하는 것이다.” 부정성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빛이 바랜다. 부정성은 아름다움에 생기를 주는 원리다. “이 쓰라림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 쓰라림은 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위한 전제다.”

 

한병철 지음/전대호 옮김, <신에 관하여>(김영사, 2025. 12. 15. 11쇄 발행),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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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없는 부활이 불가능하듯,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양면적 역설을 지닌다.

좋은 것이 좋기만 한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지혜는 언제나 이 양면의 역설에 주목할 것을 가르친다.

 

아픔 속에서 신의 창조를 찬양할 수 있고,

불행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면,

그는 지혜를 간직한 자이다.

 

- 향린 목회 461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