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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묵상

113. 놀리고 묵혀 두라!

 

너희는 여섯 해 동안은 밭에 씨를 뿌려서, 그 소출을 거두어들이고, 일곱째 해에는 땅을 놀리고 묵혀서, 거기서 자라는 것은 무엇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먹게 하고, 그렇게 하고도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한다. 너희의 포도밭과 올리브 밭도 그렇게 해야 한다. (출애 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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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자본주의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무엇이 되었든 생산과 판매를 위해서라면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이 소득의 원천이었던 시절 땅 주인은 노예를 시켜 땅을 쥐어짰고, 산업혁명 이후 공장에서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돌리면서 분업을 통해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쥐어짰습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분명하던 시절이 지나가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적 착취구조가 점점 완화되자, 이번에는 성공과 자아실현이라는 미명 아래 자기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바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라면서, 자신의 영혼을 어디에 두는 지도 모르고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노동집약적인 산업들로 단기간에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한 우리나라는 더욱 그러합니다. 5일제를 한다고 했을 때 나라가 무너지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이제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도 말들이 많았습니다. 대선 주자로 나온 사람 중 하나는 주 120시간이라도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일하도록 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말도 하였습니다. AI 시대가 되니까 로봇을 시켜 24시간 쉬지 않고 일을 시킵니다.

 

구약성서의 율법은 안식일과 안식년, 희년 제도를 끊임없이 언급하며 땅도 놀리고 묵히며, 사람도 쉬게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쥐어 짜내는 일은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놀리고 묵혀서 나온 잉여 생산물들은 가난한 이들, 들짐승 날짐승이 거저 얻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안식년과 안식일 제정에 관한 법률 마지막에 이 법을 반드시 지킬 것을 명하면서 야훼 하나님만을 기억하고 다른 신들의 이름을 기억하거나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말합니다(출애 23:13). 고대 근동의 다른 신들은 바로 쥐어짜는 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쥐어짜는 시스템은 가만 보면 결국 가진 자들만이 더 갖게 하는 결과를 낳고,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킵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이들이 많아져도 안 되겠지만, 적당히 생존하면서 살만 하다면 과도하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 창조 세계를 몰아붙일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몰아붙였기에 지구는 망가졌고, 몸살을 앓는 지구의 몸부림으로 인류까지도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쉼 없이 자기를 착취하는 일은 자신을 소진시키고 우울증에 걸리게 만듭니다. 내 자신이 건강하고 이웃이 건강하고 모든 피조물이 건강하려면 놀리고 묵혀 둘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삼으신 하나님,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일하시는 것처럼 일하고, 쉬시는 것처럼 쉬게 하여 주소서. 때로 놀리고 묵혀 두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 두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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