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01.
하나님에 관한 생각은 정신의 한계 지점에서, 육지가 끝나는 그 거친 바닷가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웅성거리던 속삭임이 돌연 끊어지고, 우리가 어떻게 열망하고 경외해야 할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곳이다. 우리의 사색이란 드넓은 해변에 놓인,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바위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그 벼랑 끝에 살 줄 아는 이만이 바위에 걸리지 않고, 헛된 확신에 매이지 않고 그 해변 너머로 나아갈 수 있다.
모든 문제들의 문제,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이론적인 사변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한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언제나 드러난 것이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것, 합리적인 지혜가 아니라 우주 설계의 신비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떻게 물어야 할지조차 모르는 물음이 인간의 불안이라는 불길에 기름을 붓곤 했다. 이렇듯 종교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한 감각에서, 지혜가 무력해지고 개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현실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형언할 수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 인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 없이는 어떤 해법도 무용하게 되고 만다.
아브라함 헤셀 지음/정다운 옮김, <예언자의 말들>(복 있는 사람, 2026. 01. 23. 초판 1쇄 발행), 13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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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은 실로 세상을 전적으로 바꾸고 있다.
그러나 한편 바로 그러하기에 진정 사람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절실해졌다.
인간에 대한 절실한 물음은 정신의 한계 지점,
즉 사유를 끝까지 몰고 간 그 지점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초월의 문제,
신에 관한 욕구를 다시 촉발하게 될 것이다.
이제 있는 것에서부터 나와서 있는 것에서 멈추는 모든 일들은 인공지능이 다 하게 될 텐데,
그러면 없는 것으로부터 있는 것을 창조하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다시 요청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바로 거기로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리라.
신을 죽인 니체 이후의 인류는 다시 신을 찾게 될 것이다.
언제나 사유하는 정신은 초월이 본질이었기에.
그리고 앞으로는 초월의 신비에 대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 향린 목회 45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