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27.
근대화 충동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 연출되든지 간에 현실 비판을 의무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충동을 사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은 항구적 자기 불만족이 낳은 자아비판을 어쩔 수 없이 수행함을 뜻한다. 법률상 개인이 된다는 것은 그 개인의 비극에 책임을 질 다른 사람이란 없고, 개인의 실패는 오직 그 자신의 방만함과 태만에 원인이 있으며, 죽어라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같이 자기 책망과 자괴감을 느낄 위험을 떠안고 사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만 시선을 고정한 탓에 개인적 삶의 모순들이 집단적으로 빚어낸 사회 공간에서 주의를 돌린 개인들은, 당연하게도 자신들이 처한 비극의 원인을 명백한 어떤 것, 따라서 개선 가능한 어떤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곤경의 복잡성을 애써 축소하려 한다. ‘전기적 해법들’이 귀찮고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다. 효과적 ‘체제모순에 대한 전기적 해법들’이 없기 때문이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의 효과적 해결방안이 부족한 것을 상쇄하기 위해 상상의 해법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그 해법이 상상에 의한 것이든 진정한 것이든, 모든 ‘해법들’이 합리적이고 실행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그 과제나 책임에서 ‘개인’화와 한편이거나 동등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두려움을 느끼는 개인들이 비록 짧은 순간이나마 그들의 두려움을 집단적으로 의지할 어떤 개별적 말뚝들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희생양을 환영한다. 그 희생양이 사생활이 엉망진찬인 정치가여도 좋고, 비열한 거리와 거친 구역들을 거니는 범죄자들이어도 좋고, ‘우리 안의 이방인’이어도 좋다. 우리 시대는 배우들이 없는 불길한 공공의 공간을 허깨비들로 가득 채우기 위해 이런저런 음모론을 뒤적이고, 그간 억눌린 거대한 두려움과 분노 덩어리가 일거에 분출될 만큼 맹렬한 새로운 ‘도덕적 공황’을 물색하는 ‘폭로성’의 타블로이드 언론인들의 시대인 동시에, 특수 잠금장치와 도난경보기, 철조망을 두른 담, 이웃을 감시하는 자경단원의 시대이다.
다시 말해, 법률상 개인의 여건과 실제 개인이 될 수 있는 기회, 즉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진정 바라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 사이에는 엄청나게 넓은 간극이 있다. 현대 개인들의 삶을 더럽히는 가장 유해한 악취가 뿜어 나오는 곳도 바로 이 깊게 드리운 간극의 심연에서이다. 그러나 이 간극은 개인의 노력, 자기 스스로 꾸려가는 생활정치 안에서 얻는 수단과 자원을 통해서는 메워질 수 없다.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공적 개념으로서의 대문자 ‘정치(Politics)’의 문제이다. 문제의 간극이 발생하고 커지는 것은 엄밀히 말해 공적 공간, 그중에서도 ‘아고라(Agora)’가 텅 빈 데서 연유한다. 일상 정치가 공적 개념으로서의 대문자 ‘정치’와 만나 사적인 문제들이 공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언어로 새롭게 해석되고, 사적인 곤란들에 대하여 공공의 해결책들이 모색되고 조정되며 합의되는 매개체로서의 공적/사적 장소 말이다.
말하자면 판이 뒤집힌 것이다. 비판이론의 과제는 전도되었다. 과거 비판이론의 과제는 전지전능하고 비인격적인 국가와 그러한 국가의 수많은 관료주의적 촉수들, 또는 그보다 규모가 작은 복제물들의 강압적 규칙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적 자율성을 ‘공공영역’의 전진 부대로부터 수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비판이론의 임무는 사라져가는 공공영역을 수호하는 것, 아니 그보다는-민주적 제도들이 성취해낼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관심 있는 시민’의 출구와 실제적 힘이 빠져나갈 곳이 유기된 탓에-빠르게 비어가는 공적 공간을 정비하여 사람을 채워 넣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이일수 옮김, <액체 현대>(필로소픽, 2025. 8. 4. 초판 3쇄 발행), 9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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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시작은 역시 사유하는 개인의 탄생이다.
데카르트가 말한 그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개인은
이제 생각만해서는 안 되고, 모든 삶에 책임적 주체로 나서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이 너무 복잡한 데다가,
한편으로 계속 액화되면서 고정된 그 무엇이 자꾸 흘러내린다는 것에 있다.
책임지려던 상황들이 계속 바뀌는 것이다.
이런 복잡함과 유동성 속에서 현대인들은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분노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현대 문명 속의 불만은 결국 희생양을 찾아내고, 거기에 분노를 쏟아붓는다.
공적 공간의 상실과 공적 공간을 책임질 사람의 감소는
개인화에 기반한 현대 민주주의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정치와 광장이 살아 있고, 거기에 책임지는 주체가 길러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그저 불안과 두려움, 허무와 피로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좀비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공적 영역에 대한 고민과
그에 따른 개인의 책임에 대한 문제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 향린 목회 45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