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22.
아도르노의 경고는 처음 쓰인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고통, 두려움, 위협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생각일지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도 그때처럼 “철학은 지금 당장 천국이 될 수 있는 이 세상이 왜 내일은 지옥이 될 수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 ‘지금’과 ‘그때’의 차이는 해방이라는 과제가 더 이상 시급하지 않게 되었거나 해방의 꿈이 무의미해졌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서둘러 덧붙인다. 마르크스에게는 세상이 ‘즉시’ 천국으로 변할 준비가 된 것처럼 곧바로 유턴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이 바로 그때 존재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아직도 마르크스의 이론을 고수하는 것은 고집에 불과하다”). 보다 인간친화적인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은 이제 보이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 현실에서 멀어졌다.
지금의 이 세상에서 다른 ‘해방된’ 세상으로, 즉 인류에게 호의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세상으로 가는 다리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다리를 설계한다고 해도 다리를 끝까지 건너가려는 사람들도, 그들을 목적지인 다리 반대편 끝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려고 기다리는 차량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쓸 만한 다리를 설계할 수 있는지, 교통을 원활하고 편리하게 하려면 다리의 출발점을 어느 물가로 잡아야 하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결론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해결책은 없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박지선 옮김, <불안의 기원>(다산북스, 2025. 5. 6. 초판 3쇄 발행), 365-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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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절망을 그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거기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자리는 결단을 요하는 당위의 자리이다.
앎이 멈춘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모르지만 한 걸음을 떼는 것.
진짜 믿음이란 확실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면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겠다.
불가능한 희망을 꿈꾸면서 그냥 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바우만의 말처럼,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위기와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해방으로 가는 해결책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아도르노의 경고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고통, 두려움, 위협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생각일지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 향린 목회 44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