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19.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그러한 인간 실존의 한계상황을 더욱 절실하게 보여 줍니다. ‘레미제라블’은 정관사 ‘Le’와 ‘비참한’이라는 뜻의 형용사 ‘Miserables’이 결합된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집합명사입니다. 그렇다면 위고는 왜 인간이 비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그 역시 도덕적 딜레마라는 실존적 한계상황에서 그 대답을 찾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 중 장발장은 배고픈 조카들 앞에서 가족을 보살펴야 한다는 가장의 의무와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시민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리고 미리엘 주교는 교회의 촛대를 훔친 장발장 앞에서 정의로운 처벌의 율법과 자비로운 용서의 율법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마지막으로 자베르 경감은 장발장 앞에서 죄인을 체포해야 한다는 공적인 의무와 생명의 은인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는 사적인 의무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결국 장발장은 가장의 의무를 다하려다 시민의 의무를 위반하게 되고, 미리엘 주교는 용서의 율법을 따르려다 처벌의 율법을 위반하게 되며, 자베르 경감은 사적인 의무를 지키려다 공적인 의무를 위반하게 됩니다. 이처럼 도덕적 결함이 없는 아름다운 영혼도 하나의 선을 선택하는 순간 하나의 악을 저지르게 되는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는 어떠한 행위로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은 영원한 죄인이다”라는 말의 실존적인 해석입니다.
도덕적 절망은 우리에게 죄책감을 줍니다. 타인에 대한 수치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뒤얽히면 심각한 자기미움의 감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자신의 죄를 은폐합니다. 놓친 선에는 눈을 감고, 택한 선만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변호하고 싶은 것이 그런 마음입니다. 보통의 말다툼이나 변명들이 모두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요. 헤겔은 그러한 태도를 ‘위선(Heuchelei)’라고 부릅니다. 만일 장발장이 가장의 의무를 다한 것에 만족하면서 위법의 정당성을 옹호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위선에 해당합니다.
“위선은 자신의 악을 타인들에게 선이라고 주장하며, 자기는 외면적으로 선하고, 양심적이고, 경건하다는 등의 거짓된 형식적 규정을 달고 다닌다. 이는 그야말로 타인들에 대한 기만이다. 그밖에도 악인은 어쩌다 자기가 행한 선행이나 경건함을 내세우며, 그럴싸한 이유를 대거나 자기만이 인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악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한 이유들을 대며 그는 자기 마음대로 악을 선으로 전도시킨다.”(G. W. F.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86, 268.)
정진우 지음, <역설의 변주: 불안에 맞서는 고요의 철학>(세창출판사, 2025. 10. 2. 초판 1쇄 발행), 19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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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다면 판단이 쉽겠지만,
세상은 어슴푸레한 새벽같이 애매모호한 일로 가득하다.
이편에서는 좋은 것이 저편에서는 그렇지 않고,
한때 괜찮은 것이 나중에는 좋지 않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고, 선악의 저 편은 언제나 존재한다.
고정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는 존재하기 어렵다.
오히려 변화만이 늘 그러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또 좋은 것들도 한 가지가 아니고, 나쁜 것들도 다양하다.
그래서 때로 좋은 것들 사이에서도 다툼과 갈등이 빚어진다.
생명과 정의가 싸우고, 평화와 생명이 싸울 수 있다.
사랑은 용서를 말하지만, 정의는 처벌을 원하기에 사랑과 정의도 부딪힌다.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서로 갈등을 빚을 때,
정말 주의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기방어와 자기만 옳다는 독선이다.
헤겔에 따르면 바로 이 독선은 위선이거나 무지인 것이고,
그것이 죄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죄도 범죄행위나 도덕법의 위반이라기보다,
이런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서 비롯되는 고통의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조금이라도 덜 지으려면 겸손해야 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빌립보서 2장 3절) 훈련이 필요하다.
보편적 가치 주장이 사적 감정에 휘둘리거나 아집에 매이지 않도록
오늘도 겸손히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 향린 목회 44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