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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생명 긍정의 원리

by phobbi posted Jan 14, 2026 Views 26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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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1-14

2026. 01. 14.

 

인간은 영혼이 아닌 생체(生體, una corporalità vivente)입니다. 기독교 사상은 결코 영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16세기 들어서야 처음으로 영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신약성서는 살(came)을 이야기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됐다.” 그리스어 사륵스’(σάρξ), 히브리어 바사르’(bâśâr)에 해당하는 ’(corpo)이 아닙니다. 살이 전부이고, 거기에 영혼은 없습니다. 살에 존재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히브리어의 그리스어 번역 성서인 70인 역() 성서에서 바사르의 의미는 영혼이 아닌 생명입니다. 신약성서는 결코 몸과 영혼을 따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몸과 영혼의 분리는 그리스의 이원론 시각입니다. 이원론 시각에 따르면, 몸은 부정합니다. 고결하지 않다는 뜻이지요. 그리스인들에게 몸은 악의 원리였습니다. ‘원죄’(原罪) 문제도 이러한 몸의 소유와 관련해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아담 신화는 원죄를 말하지 않습니다. 원죄 개념은 최초의 악이 몸, 즉 육체(corpo)를 지녔고 육체는 영혼의 샘이라고 주장했던 플로티노스의 생각을 재활용했을 뿐입니다.

 

기독교의 시각은 이러한 그리스의 시각과 다릅니다. 사도 전통을 계승한 교부인 아테나고라스의 선언을 읽으면, 그러한 시각차를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아테나고라스는 그리스인들은 영혼 불멸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영혼도 죽는다고 이야기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초기 기독교 신앙에 영혼 불멸은 없습니다. 몸의 부활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거의 대다수의 가톨릭 신자는 이단일지 모릅니다. 몸과 영혼이 존재하고, 몸은 죽고 영혼이 불멸한다는 전제에서 부활을 논한다면, 몸만 죽었다가 부활하는 셈입니다. 이것은 초창기 이단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초기 3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도 기독교 사상은 고대 그리스의 이원론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이라는 반증입니다. 앞서 언급한 해방윤리학에서 저는 이원론을 기독교 왕국(cristianità)의 인간론으로 주장했습니다. 그에 반해,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한 기독교 왕국 이전의 초기 3세기 동안 교부들의 주요 논제는 부활이었습니다. 영혼 불멸설에 관한 이야기는 한참 뒤에 나왔지요. ‘부활에서 영혼 불멸로의 변화는 기독교의 그리스(헬라)’, 뒤틀려진 기독교를 의미합니다. 박해받던 종교가 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더불어 박해자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집니다.

 

제가 지금 소개하는 메시아 유물론은 생명 윤리를 지향합니다. 생명은 인간의 모든 행동의 궁극적인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공부하고, 갈증을 해소하는 등의 행위는 하나같이 내 생명이 작동하는 순간입니다. 생명은 인간을 산 존재로 만드는 행위 전반의 토대입니다. 또한 생명은 매우 취약합니다. 불볕더위나 지나친 기온 상승에서 인간은 자칫 질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한이나 극지방에 있어도 죽음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너무 물을 많이 먹어도 죽고, 물을 마시지 않아도 탈수증으로 죽습니다. 과식은 비만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음식을 먹지 않으면 굶주림으로 죽습니다. 이 모든 내용이 생명의 취약성(vulnerabilità)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지구의 온도가 너무 높아도 죽고, 너무 낮아도 생존할 수 없습니다. 생명은 지난 35천만 년 동안 이 세계에서 멈추지 않고 발생한 현실임과 동시에 매우 불안정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한 세기 안에 지구 생명체를 모조리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생명체 파괴의 문제는 금세기 우리 행성이 직면한 다급한 문제입니다. 저는 생명 긍정의 원리를 절대 원리로 제시하려 합니다.

 

카를 마르크스 외 지음/안성헌 엮고 옮김, <자본종교>(도서출판 비공, 2024723일 초판 발행), 엔리케 두셀, “전신(錢神)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 176-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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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육이원론은 원래의 기독교적 사유가 아니다.

몸과 살과 무관한 영혼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몸과 살로 이어가는 날마다의 생()에 집중한다.

영혼이 불멸한다는 생각은 하나님과 무관한 존재의 영원성을 가리키기에,

창조주 하나님 신앙고백과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생명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 속에서만 지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몸과 살을 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몸과 내 살 만큼이나 남의 몸과 남의 살을 중요하게 여기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온전히 그 생()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이어가는 기독인의 사명이다.

 

우리의 몸과 살은 너무나 취약하기도 한데,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잘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대로 절대 윤리가 있다면,

그건 바로 모든 생명의 긍정의 원리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향린 목회 43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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