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07.
여기에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근대적 이해로 볼 때 저자는 한 권의 책이 담고 있는 의미들을 독점하며, 독자는 수동적인 수혜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저자 기능’에 대한 근대적 오류의 하나이다. 책이 출판되자마자 저자는 사라진다. 소위 ‘저자의 본래적 의도(original intention)’와 상관없이, 독자는 제2·제3의 저자로 기능하면서 ‘자기만큼’ 책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간다. ~~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나’는 나의 갈망·욕구·희망·가치관과 만나고 또 새롭게 그것들을 창출하고 구성한다. 즉, 한 권의 책은 언제나 ‘나’를 통해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권의 ‘좋은’ 책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은 맹목적 ‘정보’가 아닌 다층적 ‘세계들’이다. ‘나의 존재함’이란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개별적 나’는 타자와의 절대적 분리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좋은 책은 바로 나-타자-세계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담은 ‘다층적 세계들’과의 만남을 담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한 권의 책에서 제시하는 그 ‘세계’는 그 저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나’와도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다양한 ‘세계들’인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초청장이 되는 이유이다. 이 점에서 인간은 ‘홀로’이면서 동시에 ‘함께 존재’라는 것, 그 ‘홀로-함께 존재’로서 이 세계에 개입해야 하는 책임성, ‘좋은’ 책이 우리에게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통찰이다
강남순 지음, <배움에 관하여: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동녘, 2017. 7. 31.), 277-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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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사라져서는 안 된다.
책은 또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책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끝없는 세계를 펼쳐낸다.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문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문 틈으로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길을 본다.
멀리 갈수록 더 적게 알기에
성인은 다니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이름지으며,
하지 않으면서도 이루는 것이다.
(不出戶, 知天下; 不闚牖,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老子 道德經』 47章)
임마누엘 칸트는 평생을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지만,
이곳에서 현대 정신을 만들어 냈고,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강의 중 하나가
세계지리(자연지리학)였다는 사실은
책이 왜 하나의 우주인가를 보여준다.
- 향린 목회 43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