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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고요에 머물기

by phobbi posted Dec 28, 2025 Views 17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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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2-28

2025. 12. 28.

 

오늘날 우리는 정보 소음과 소통 소음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더는 기도할 수 없다. 우리의 눈은 끊임없는 게걸스러움을, 끊임없는 먹기를 강제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눈을 감을 수 없다. 눈 감기는 고요 속에 굳건히 머무르기를 의미한다. “기도할 때와 바라볼 때 온 영혼은 고요 속에 굳건히 머무르며 빈자리를 견뎌내야 한다. 그리하여 오직 초자연적 부분만이 작동하면서, 공허하게 작동하면서, 영혼의 모든 에너지의 최고점에 연결되도록.” 영혼의 초자연적인 부분을 위축시키는 영혼의 비만은 영혼 안에서 고요가 확산하지 못하게 막는다. 자아는 상상력으로 소음을 일으키고 모든 빈 공간을 메운다.

 

자아가 터무니없이 강해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신에게 접근할 통로를 잃었다. “신의 의지-어떻게 신의 의지를 알 수 있을까? 내적인 고요를 회복할 때. 모든 요청, 모든 견해를 침묵시키고, 사랑으로, 온 영혼으로 말없이 생각할 때”. 탈창조는 영혼을 고요하게 만든다. 탈창조는 꺼버리기과정을 작동시켜 우리를 신에게 데려간다. 신에게 도달하면 요란한 자아가 꺼진다. “나라고 말하는 그것을 꺼버리는 이 과정은 때로는 행복을, 때로는 아픔을 동반하지만, 어느 경우에나 본질적으로 행복한 과정이다. 왜냐하면 내적인 고요가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한병철 지음/전대호 옮김, <신에 관하여>(김영사, 2025. 12. 15. 11쇄 발행), 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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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고요 속에 굳건히 머무르기.

빈자리를 견디며 영혼의 군더더기를 걸러내기.

소음을 일으키는 상상들을 멈추기.

태양을 끄고 오히려 어둠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

내적인 고요가 뿌리를 내리며 성장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

요란한 자아를 비우고 존재의 바닥에 나를 내려놓기.

 

앞으로 천천히 해 나갈 수행들이다.

 

- 향린 목회 420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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