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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크리스마스에는 십자가를 생각하자

by phobbi posted Dec 22, 2025 Views 20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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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2-22

2025. 12. 22.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이방(異邦) 종교의 어느 신()을 기리는 날은 충분히 분요(紛擾)하지만, 젊은 예수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사유되지 않는다.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사도들의 공관복음서조차도 그 사유의 길을 애초에 저지하는 노릇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 사유의 길은 전승되지도, 교시(敎示)되지도 않는다. 기울기를 얻어 치닫는 사유를 막는 것은 언제나 다른 종류의 사유(頑思)인데, 이 사유의 알리바이들이 사유를 차단시킨다. 예수의 죽음/(그러므로 삶)을 철저하게 사유했던 이단아들은 제 스스로 변명을 가슴에 묻은 채, 어제도 오늘처럼 역사 속으로 묻혀갔을 뿐이다.

 

1224, 빠알갛게 북적거리는 도심을 지나면서 그 핏빛 죽음을 떠올린다. 2000년 전 짧게 살고 비참하게 죽었다던 예수라는 이름의 젊은이를, 여름 신새벽의 유성과 같은 속도로 떠올린다. 메타포에 능했으면서도 진리를 답하지 않았다던 서른세 살 젊은이의 죽음을 누구보다 빠르게 떠올려본다.

 

김영민 지음, <봄날은 간다>(글항아리, 2012. 04. 23.),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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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시즌이 되면 거리는 낭만으로 가득 찬다.

도시는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넘실거리고,

연말을 아름답게 보내려는 이들로 북적거린다.

자본주의 세상은 예수의 탄생을 누구나 반하도록 소비한다.

 

그러나, 예수의 삶에서 끝내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30대 초반에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의 조롱을 받으며

제자들이라는 이들도 모두 도망가고

심지어 하늘에 계신 분도 침묵하는 가운데

거친 나무에 매달려 숨을 가쁘게 내쉬며

극심한 고통 속에서 홀로 모든 짐을 졌다.

 

그리스도교는 십자가 위에 서 있는 종교여야 한다.

그래서 성서의 예수 탄생 이야기도 십자가를 가리킨다.

동방 박사의 방문은 제국에 맞서 싸우는 작은 식민 국가의 아이에게 거는 기대를 보여주며,

구유에 누운 아기는 십자가의 무력함의 예고로써 진짜 혁명의 역설을 드러내는 것이다.

 

- 향린 목회 41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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