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4.
산책은 술보다는 차(茶)와 같아, 혼자 걷는 게 좋다. 물론 혼자 걸으면서 ‘생각’을 하라는 게 아니다. 혼자 하는 생각은 대개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종종 자익적(自溺的)이다. ‘공부’하지 않는 이들에게 오히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잡념 속에 천 년을 빠져 있어도 구원은 없다. 산책의 요체는 오히려 생각과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거울의 바깥으로 몸을 끄-을-며 외출한다.
동무들과 나누는 산책의 기쁨도 결코 적지 않다. 하늘과 나무와 바람에다가, 다정하고 서늘한 대화까지 섞인다면 인생의 천국을 따로 구할 노릇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요체는 중용인데, 말이 걸음을 죽여도 곤란하고, 걸음이 말을 놓쳐도 안 된다. 다변(多辯)인 자는 말수를 줄여야 하고, 눌변인 자는 걸음에 의지해서 입을 벌릴 수 있다.
김영민 지음, <봄날은 간다>(글항아리, 2012. 04. 23.),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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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안 한 지 오래되었다.
그만큼 잘 못산다는 이야기인데,
이제 학교도 종강했으니,
찬 바람 느끼며 알싸한 겨울 산책을 시작해야겠다.
위의 저자는 산책을
‘다르게 걷기’, ‘어긋나게 걷기’, ‘흔들리면서 걷기’
‘온몸으로 걷기’, ‘기(氣)로 걷기’, ‘생각보다 빠르게/느리게 걷기’
‘의도나 상처보다 앞서/뒤처져 걷기’, ‘버리면서 걷기’
그리고/마침내 ‘걷다가 죽어버리기’라고 말한다.(위의 책 184)
실로 적확하다!
- 향린 목회 40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