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뜻나눔

두 번 만에 고치기

by phobbi posted Dec 09, 2025 Views 178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5-12-09

2025. 12. 09.

 

실수를 거듭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두 번째의 반복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은 곧 성()인데, 두 번째가 흔히 첫 번째의 장기튀김에 먹힌 탓이므로 그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 누구나 꼭 세 번째의 반복에 이르면서 스스로의 맨망스런 진실을 여지없이 증명하고 만다. 이 경우 조심(操心)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노력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손에 쥐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훈련이다. 세 번째에 이르지 않고도 나의 숨은 진실을 아는 일은 곧 현()이지만, 물론 그것은 고운 애인만을 앞에 놓고 먼 산만 바라보는 일보다 백배나 어렵다.

 

김영민 지음, <봄날은 간다>(글항아리, 2012. 04. 23.), 148.

 

==========================

 

논어에 나오는 일화다.

 

노나라 애공이 물었다. “제자 중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답했다.

안회가 배우기를 좋아했습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으니, 배우기를 좋아하는 이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論語』 「雍也6.)

 

공자가 끔찍이도 아꼈던 제자 안회에 대한 평가는

화를 옮기지 않는 것”,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고,

이것이 배우기를 좋아하는 이의 특징으로 언급된다.

 

정말 대단하다.

 

오늘날 학교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다양한 가르침이 펼쳐지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배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경지는 진실로 거룩함’()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중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바로

내면의 뒤틀린 감정을 남에게 옮기는 것이다.

보통 이럴 때 자기가 그러는 줄도 모르기에 무한 반복된다.

남 탓하고, 화풀이하게 된다.

 

반복되는 실수 속에서 조심(操心)하는 마음만이라도 끌어올릴 줄 안다면

그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 향린 목회 401일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