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공포 반응
바로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개를 들고 보니,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추격하여 오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크게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었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묘 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다 끌어내어 죽이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다니,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십니까? 이집트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출애 14:10-12)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파라오가 뒤쫓습니다. 히브리 백성의 노동력으로 운영되던 제국에서 노예와 노동자의 탈출은 곧 사회의 붕괴를 의미했을 것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대로 장정만 60만이 탈출했을 가능성은 없지만, 작은 규모의 소요와 동요, 탈출도 거대한 물결로 확산될 수 있고,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출애굽 이야기는 참된 자유를 향한 여정, 모든 억압으로부터 탈출하여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일종의 비유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 밑에서 안전하게 자라났지만, 성인이 되면 그 부모의 품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만 성숙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릴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서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양의 스승 공자 또한 서른 살에야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다(三十而立)고 술회했듯이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한 인간이 성인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유로운 인간으로 모든 존재와 함께 더불어 배려하고 존중하며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길에는 다양한 장벽과 예기치 않은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격해 오는 바로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낍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며 따지면서 묻습니다. 그런데 이 말들은 모두 공포 반응에서 나온 말이지 현실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위기가 닥치면 차분히 힘을 모아 그것을 처리해야 하는데, 공포가 엄습하면 마음이 흔들리고 요동친 마음 때문에 온전한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출애굽의 기쁨과 감격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집트 사람들 밑에서 고생하던 시절도 잊어버리고, 다시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코로나 19나 기후재앙, AI의 급격한 발전에 의한 사회 위기는 이렇게 사람들을 흥분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우리들의 결정이나 선택이 공포 반응인지, 아니면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숙고하여 내린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위대한 능력의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늘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