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01.
얼마 전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 씨와 대담을 나눴습니다. 첫 번째 화제는 ‘아이들은 왜 그토록 사회적 승인을 갈망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대학교 1학년 남학생이 어둠의 아르바이트로 장물을 운반하던 중 차에서 가스가 새서 갓길에 정차했다가 트럭에 추돌당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보통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 때는 우등생이었고 괜찮은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말을 잘하고 싶다는 이유로 호스트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후 어둠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사했습니다.
도대체 이 학생은 무엇을 바라고 그런 일을 했는지 시라이 씨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고유명사로 승인하고, 평가하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학교 친구를 넘어선 더 넓은 범위에서 불특정 다수로부터 사회적 승인을 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에 도달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사회적 승인을 구하는 경향이 급격히 강력해진 듯합니다.
최근 진행된 설문 조사에서 초등학생이 가장 되고 싶은 직업 1위는 유튜버였습니다. 아마 아이들이 유튜버가 가장 효율적으로 사회적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론상으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을 내보낼 수 있으니까요. 아무 준비도 자격도 필요 없죠. 학력 불문, 경력 불문으로 말만 잘해도 유명해지고 월수입으로 수십만, 심지어 수백만 엔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그런 식으로 유명 인사가 돼 그것을 발판으로 국회 의원이 된 실례가 우리 눈앞에 있죠. 비용 대비 효과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라고 줄곧 세뇌당해온 아이들에게 ‘유명해지기 위해 유튜버나 한다’는 사고방식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유명해지겠다는 욕망의 방식입니다. 왜 유명해지고 싶은 걸까요? 저만 해도 어렸을 때 딱히 유명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신문 기자가 되고 싶다 썼고, 고등학생 때는 문학 연구자로 바뀌었습니다. 쓰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을 공표해서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와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쓰고 싶은 것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결과적으로 독자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질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제 글쓰기의 목적은 아닙니다.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고 그 저작물이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 닿는다면 제 목표는 달성됩니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용기론>(알에이치코리아, 2025. 05. 26.), 21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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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로부터 사회적 승인을 받고 싶다는 욕망,
즉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우치다 선생 말대로
이전 세대 사람들은 딱히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본 사회를 비롯해서 한국도 비슷하게 이런 욕망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왜일까?
인정 욕구는 보통 어린 시절 가장 가까운 주양육자나 가족으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과 인정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경쟁으로 내몰려서 그런가?
아니면, 가상 공간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이것을 통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비교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자본의 축적과 획득이 유명세와 연결되기 때문일까?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윤리나 참된 가치, 소명과 같은 것을 얻기 위한 시간이 확보되지 못하기 때문일까?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외부의 평가나 사회적 승인보다 자기 스스로 자기 일을 찾고,
거기에 집중하며, 그로 인해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을 다수 양성할 수 있을까?
- 향린 목회 39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