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8.
나단을 통한 예언은 여호와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여호와는 백향목 집(성전)을 지어 주겠다는 다윗의 요구에 “정말 네가 나를 위해 내가 살 집을 지으려느냐?”라고 질문하신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방점이 찍혀 있다. 첫 번째 방점은 “내가 살 집”이라는 말이며, 두 번째 방점은 “네가 나를 위해”라는 구절이다. 이 두 구절은 모두 다윗을 위한 매우 중요한 교훈들로 이어진다. 먼저 “내가 살 집”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다윗과 나단 선지자’의 오해를 교정하기 위해 의도된 말이다.
고대 근동 세계에서 신전은 말 그대로 신이 거주하는 주택이었다. 마치 왕궁에서 신하들이 왕을 모시듯, 신전의 제사장들은 신을 섬기는 ‘가정부’ 역할을 했다. 아침에 신을 깨우고, 세수할 물을 준비하고, 새 옷을 입혀 드리고, 정성스럽게 차린 식사를 올리고, 신전을 청소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인간 집안의 일상과 똑같았다. 고대 근동 사람들에게 신은 정말로 신전에 ‘거주하는’(야사브) 존재였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다윗의 문제가 있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고대 근동의 여느 신들과 같은 존재로 이해했던 것이다. 즉, 인간이 지어 준 멋진 집에서 ‘살면서’ 인간의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는 수동적인 신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는 더 심각한 함의가 숨어 있다. 다윗이 여호와를 위해 집을 짓겠다는 것은, 다른 고대 근동 왕들처럼 하나님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을 ‘내 집’에 모시고 ‘내가’ 돌보면서, 결국 신이 ‘나의’ 왕국을 축복하도록 만드는 전략 말이다.
고대 근동의 건축 양식을 보면 이런 의도가 더욱 명확해진다. 당시 신전은 왕궁과 함께 하나의 ‘복합 단지’를 이루었다. 마치 현대의 대기업 회장실 옆에 개인 접견실이 있는 것처럼, 신전은 왕의 전용 채플 역할을 했다. 왕이 신과 일대일로 만나는 개인적이고 은밀한 공간이었던 셈이다. 흥미롭게도 신전은 항상 왕궁보다 작게 지어졌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신전의 크기가 곧 신과 왕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후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 역시 솔로몬 궁전보다 훨씬 작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은 왕의 ‘곁’에 있지만 왕보다는 ‘작은’ 존재여야 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고대 근동 왕들에게 신전 건축은 성공적 통치를 위한 필수 수단이었다. 신을 가까이 두되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두는 것이 목표였다. 다윗도 자신의 백향목 궁전을 완공한 후, 이제 안정적 통치를 위한 다음 단계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성경이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천막에 거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순수한 안타까움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이런 다윗의 제안에 하나님은 자신은 한 번도 ‘집에 산 적’(야사브)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은 ‘장막과 천막’에서 다니고 있다(미트할레크)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은 신전에 사는 고대 근동과 달리, ‘장막과 천막에 다니는 신’이다. 히브리어 ‘야사브’가 고대 근동의 신들을 대표하는 말이라면 ‘미트할레크’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능적 본질을 표현하는 말이다. ~~
여호와 하나님이 ‘장막과 천막’에 다니시는 신이라는 뜻은 그분이 섬김을 받는 신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의 자리를 다니시면서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인간들을 돌보시고 섬기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들의 삶의 현장에 다니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그분을 대신해 백성들을 통치하는 지도자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7절에서 하나님은 바로 그 교훈을 이야기한다.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자원한 지도자 다윗에게 하나님은 “내가 언제 백향목 집을 지어 달라고 ‘이스라엘 지도자’(개역개정 “이스라엘 지파”) 중 하나와 한 마디라도 상의한 적이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내가 이스라엘 지도자에게 내린 명령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목양하는 것”이라고 교훈하신다. ~~ 하나님의 지도자들이 성전을 짓는 일보다는 백성들을 목양하는 일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집에 거하는 신’이 아니라 ‘백성들 가운데 거니는 신’이기 때문이다.
김구원 지음, <구약, 다소 의외의 메시지>(홍성사, 2025. 9. 25. 초판 1쇄 발행), 29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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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7장 5-7절에 대한 해설이다.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는 다윗의 속셈과
그것을 거부하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내리는 훈계가 담겨 있다.
오늘날도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결국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만 하나님을 이용한다.
교회나 성직자들도 이런 유혹에 넘어가고,
결국은 종교 장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종교와 정치의 야합도 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고, 본말이 뒤집힌 것이다.
이러한 모든 행태의 밑바닥에는 욕망 추구와 힘에 대한 숭배가 깔려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런 종교적 욕망과 지배 욕구와 다른 것이다.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순식간에 공적 신앙은 사적 욕망으로 변하고 만다.
- 향린 목회 39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