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6.
로드리고의 의문에 대해 페레이라는 “그들이 믿었던 것은 그리스도교의 신이 아니었네. 일본인은 지금까지 신의 개념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네.”라고 답했다.
페레이라가 20년의 세월을 통해 깨달은 것은, 이 일본에서 일본인들이 믿었던 것은 그리스도교의 신이 아니라 그들의 신이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노우에 치쿠고노카미는 “신부님은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오”, “이 일본이라는 늪지에 패한 거요”라고 말한다.
페레이라는 로드리고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기리시탄이 멸망한 것은 자네가 생각하는 금지 제도의 탓도, 박해 탓도 아니네. 이 나라에는 어쩔 수 없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던 거야.”
페레리아가 강조하고 있는 이 내용은, 엔도가 「나와 그리스도교」 가운데서 밝히고 있는 다음의 내용과 연관된다.
“우리 일본인에게는 이런 그리스도교의 역사도, 전통도, 감각도, 문화 유산도 없습니다. 그런 역사와 전통이 없어도 신앙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뿐이지만, 그러나 더욱 두려운 것은 이 일본인의 감각에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청년기부터 일본인의 수수께끼와도 같은 이 감각을 자신의 주변에서, 아니, 스스로에게서 발견하고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이평춘 지음, <엔도 슈사쿠 문학 연구>(도서출판 어문학사, 2025. 3. 31. 초판 1쇄 발행), 12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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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고민은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모든 문명과 문화의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일 것이다.
엔도가 그리스도교와는 다른 일본의 그 무엇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고 놀랐던 것처럼,
같은 동아시아에 있고,
서구보다는 오히려 일본과 더 많은 역사를 공유했던 우리도
진지하게 그리스도교를 생각해 본다면 엔도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이다.
한국 그리스도교라고 할 때, ‘한국’과 ‘그리스도교’는 얼마나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믿고 있는 신은 과연 그리스도교의 신이 맞을까?
아니, 더 궁극적으로 신을 믿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자본과 실증, 효율성에만 방점을 두는 오늘날,
이런 질문들을 지며리 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신앙에 대한 질문은 내 맘 깊은 구석에 여전히 남아서 나를 일깨우고 있다.
- 향린 목회 38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