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어디에나 빛이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늘로 팔을 내밀어라. 그러면 손으로 더듬어야 다닐 만큼 짙은 어둠이 이집트 땅을 덮을 것이다.” 모세가 하늘에다 그의 팔을 내미니, 이집트 온 땅에 사흘 동안 짙은 어둠이 내렸다. 사흘 동안 사람들은 서로 볼 수도 없었고, 제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빛이 있었다. (출애 10:21-23)
=====================
바로의 계속되는 고집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아홉째 재앙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하는 흑암입니다. 요즘에는 전기로 인해 밤에도 불야성(不夜城)처럼 환한 곳이 많지만 제가 어릴 때 시골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눈은 그 어둠에 적응합니다.
그러나 오늘 내린 재앙은 손으로 더듬어야 다닐 수 있는 그야말로 짙은 어둠이었습니다. 단순한 밤이 아닙니다. 이것은 창조 이전의 혼돈과 깊은 흑암을 상징하며, 야훼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내릴 심판을 의미합니다. 아모스서 5장 18절 이하에 보면 주님의 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으며, 사자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곰을 만나거나, 집 안으로 피해 벽을 짚었는데 뱀에게 물리는 꼴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자의 삶이 어떠한지 오늘 성경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손발을 어디에 둘지를 모르며, 서로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됩니다.
한편 이스라엘 자손, 즉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빛이 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빛은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빛이 있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태양으로부터 생명을 얻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물리학자 장회익 선생은 진정한 의미에서 생명은 태양계라고 하시며 ‘온 생명’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이 문자 그대로 어둠과 빛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절망적인 삶과 희망찬 삶을 표현하는 것이고, 교만한 지도자의 고집이 이집트 전체를 옴짝달싹 못 하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이 왕이 되시기에 빛과 진리가 있고, 그 안에서 교인들은 참된 삶의 의미를 누립니다. 그런데 현실의 교회들이 오히려 어둠 가운데 있는 것 같아 고민이 깊어집니다. 어디에서나 빛으로 존재하는 신앙인들이 그리운 때입니다.
기도 : 빛이신 하나님! 우리를 비추시고, 또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비추라고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어디에나 빛이 있는 곳이 되도록 성숙한 신앙을 갖게 하여 주소서. 눈을 떠서 서로가 서로를 보며 비추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