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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나를 만지지 마라

by phobbi posted Nov 18, 2025 Views 23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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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1-18

2025. 11. 18.

 

예수를 붙잡으려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예수는 단호하게 나를 만지지 마라! 나를 붙들지 마라!” 하고 막는다. 그러나 이는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라고 토마스 사도에게 권하는 장면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그러나 우리는 토마스 사도가 예수의 상처를 실제로 만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닫힌 문으로 들어오는 것과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하신 말씀은 토마스 사도와 함께 있는 장면을 피상적으로 이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활에 관한 조악한 유물론적이해 그리고 이 책에서 거듭해서 경고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서 독자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신앙은 증인들의 증언에 기반을 둔다. 우리는 신앙과 은총으로 그 증인의 대열에 초대받고 참여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격자가 아니다. 부활 사건에서 목격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삶으로 예수를 증언하기로 준비된 사람들이 중요했고 중요하다. 예수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와 연결되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이 세상에 함께하고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선물을 다만 질그릇 속에가지고 있다. 우리 신앙은 우리의 인간적 행위에 머물러 있다. 이 세상과 육체 안에서 순례하는 시간 동안 의심이라는 어둠에서 결코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우리의 이성, 언어, 경험, 상상력의 한계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순례하는 신앙에 머물러 있다.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지 못한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가장 열정적인 사랑과 동경조차 이 세상에서 소유물처럼 그를 갖기 위해 만져서 신비의 베일을 완전히 벗겨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늘 상기해야 한다. 길은 타보르산의 영광스러운 빛에서부터 곧장 일상의 골짜기로 심지어 겟세마니의 어둠의 내리막길로 이어져 있듯이, 부활한 이와의 만남 역시, 그 만남이 항상 기쁨으로 충만할지라도 붙잡을수 없고 이 세상의 가장 확실하고 소중한 것 한 가운데 나의 보물 상자 안에 꼭꼭 보관해 둘 수 없다. 그 만남은 질적으로 다른 확실성으로, 더 깊고 더 섬세하며 더 상처받기 쉽고, 바람이 몹시 부는 길에서 꺼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는 불빛에 비교할 수 있다. ‘여기에 초막 셋을 짓겠다’(마태 17,4 참조)는 제안으로 부활한 예수를 붙잡아 둘 수 없다. 그는 늘 길 위에 있다. 그는 아버지에게로 가고, 그가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멈춰 있기보다 그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토마시 할리크/오민환 옮김, <상처 입은 신앙>(분도출판사, 2018. 7. 5.), 18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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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종교에 머무는 이유는 확실한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신이 되었든, 진리가 되었든 그것이 나를 붙잡아 줄 것 같아서,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외로움에 지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진짜 신앙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신앙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이며,

불안이 자유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과

외로움에서만 진짜 자기와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신이나 진리는 붙잡을 수 없고, 오로지 추구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신앙인은 멈추거나 앉는 법이 없다.

그저 나아갈 뿐이다.

그러다가 지치면 잠시 쓰러질 수는 있으나,

그 자리가 베델임을 알고,

거기에 돌 하나 세우고 또 걸어간다.

 

- 향린 목회 380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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