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7.
미래의 종교는 고독과 연대의 역설 가운데 있다. 고독과 연대는 반대가 아니다. 진짜 고독과 거짓 고독이 대립되며, 진짜 연대와 가짜 연대가 대립되는데, 숭고는 참 자유와 진실한 사랑의 연결 같은 것이다. 오히려 고독과 연대의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숭고를 가로막는 거짓 자기애적 고독과 거짓 연대에서 벗어나게 된다. 머튼은 1949년 12월 29일 일기에서 “우리 삶에 있는 영적인 자기애의 가능성”에 대해서 정직하게 고발한다. 자기애적인 고독이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책임을 대체하기 위한” 거짓 고독이다. 그는 ‘고독을 향한 나의 열정 속에 얼마나 많은 영적 자기애가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것은 진정한 기도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고독, 모든 보이는 것과의 관계로부터 신상(神像)을 만들려는 우상적 시도로부터 벗어나려는 부르심이다.
“이제 나는 처음으로 홀로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수도자로의 부르심(a solitary vocation)의 본질은 볼 수 없는 하나님 안에서의 두려움, 무력함, 고립으로의 부르심인 것을 발견했다.”
그는 진정한 고독이란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 속에 계신 하나님의 고독함에 동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고독은 장소적인 부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초월”이며 “그분의 존재 자체”라고 본다. 그는 하나님의 고독에 동참함으로써 “인위적이고 허구적인 차원으로부터 물러나서” 본질적이고 참된 존재의 깊은 차원으로 진입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로 하여금 자신이 삶을 공유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빚진 자이며, 인류의 한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삶을 공유하는 빚을 지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임무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인류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김리아 지음, <내일의 종교를 모색하다>(신의 정원, 2025. 4. 20.), 18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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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21세기를 ‘외로움의 세기’라고 부른다.
전 세계 인류가 외로움에 지쳐 있다.
진정한 자기를 찾는다고 이것저것 다 해본 사람도,
결국은 외로움에서 무너지고 만다.
외로움을 넘어서려면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안에서 외로움을 넘어설 수 있다고 가르친다.
토마스 머튼은 하나님 안에 머물렀을 때,
인류의 한 사람으로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이것을 믿는다.
내가 아직도 그리스도교와 이혼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유이다.
- 향린 목회 379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