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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소음을 신호로 들으려면

by phobbi posted Nov 15, 2025 Views 23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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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1-15

2025. 11. 15.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생각은 일단 보류하고, 아직은 이해가 안되지만 주의 깊게 듣고 있으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경이와 인내를 가지고 맞이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로 귀 기울이지 않으면 소음은 절대 신호로 바뀌지 않습니다. 소음은 소음이고, 신호는 신호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사람에게는 소음이 신호로 변하는 순간은 결코 찾아오지 않습니다.

 

~~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의미에서 시간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처음에 온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다음에 온 기호의 의미를 이해해서라는 식으로 연속적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장의 마지막 말을 듣고 비로소 맨 앞의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를 하게 되지요. 전부가 다 그렇습니다. 문장의 마지막 말도 맨 처음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면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문장의 마지막까지 듣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맨 앞의 말의 의미를 확정하고 다시 문장 끝으로 돌아가서와 같이 시간 속에서 왔다 갔다합니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순서로 불가역(不可逆)적으로 진행합니다. 미래까지 가지 않으면 과거를 확정할 수 없고, 과거가 확정되지 않으면 미래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시간이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왕복하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이것은 음악을 들었던 경험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음악을 듣고 나서 리듬과 멜로디를 음미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들리지 않게 된 악음(樂音)’이 아직 남아 있고, ‘아직 들리지 않은 악음의 예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들려오는 악음만으로는 음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음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음이 이미 예감으로 들립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 중에 있을 때만 음악은 음악이 됩니다. 그러므로 음악을 듣는 것은 배움의 기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시간의 역동 속에서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무시간 모델로는 음악이 들리지 않습니다. 들릴 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도, 모차르트, 바흐의 음악도 단독의 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미적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이른바 하나의 곡을 일생 동안 연주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한 갖가지 행동과 말의 진짜 의미는 그 곡을 마지막까지 듣지 않으면 확정할 수 없습니다. ‘개관사정(蓋棺事定)’, 즉 관뚜껑을 덮은 후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죽은 후에 비로소 그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모든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육예의 하나로 음악을 들었던 이유는 시간 의식(意識) 갖기’, ‘인간은 시간 속의 존재라는 것을 알기가 지성의 기초라는 것을 고대의 성현은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육아 얘기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자식을 양육한다는 것은 음악을 듣는다는 경험과 어떤 의미에서는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내지르는 소음은 어떤 문맥안에 놓았을 때 비로소 음악으로 들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소음이 신호가 되는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시간을 들여서 기다리지 않으면 멜로디 구조를 알기까지 개개의 음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맥 속에 놓았을 때 아이가 내지르는 해독 불가한 기호를 한 번에 알아듣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요구하는 일은 교향악을 주의 깊게 듣는 청취자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음절의 미적 가치는 다 들을 때까지는 확정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가 내는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소홀히 넘기지 않도록 경의와 인내를 가지고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합니다. ~~ 아이의 소리를 노래로 들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부모밖에 없습니다.

 

우치다 타츠루 지음/박순분 옮김, <하류지향>(열음사, 2007. 10. 25. 초판 1쇄 발행),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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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도 소홀히 넘기지 않도록 경의와 인내를 가지고 조용히 귀 기울일 때,

그것도 시간을 들여서 차분히 기다리면서,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서 이어가며

섣부르게 먼저 판단하지 않고 충분하게 들을 때만이

소음은 신호가 되고, 소리는 음악이 되고

우연은 필연이 되며, 사건은 의미가 된다.

 

소음을 신호로 읽어낼 수 있다면,

우주는 하나의 교향악이 된다.

슐라이어마허가 절대 의존의 감정을 말할 때,

그는 아마 우주를 이런 방식으로 직관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일도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음을 신호로 알아듣는 일일 것이다.

 

- 향린 목회 37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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