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3.
시인으로서 내 존재는 고아이다. 누군가가 나를 태어나게 했고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남겨진 고아. 고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댈 전통이 외부에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전통이라는 것에 기대면 스스로를 베끼는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위기감 때문이다. 여태껏 누군가가 써오던 시를 쓰면서 시인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전통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재자이다. 독재자는 ‘혼자 말하는 사람’이다. 전통이라는 게 주어져 있는 일방통행일 때 그것은 인간을 억압한다. 그래서 나는 내 속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기억’이지 전통에 기반하고 있는 무엇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아인 내가 물려받은 것은 물론 있다. 그것은 내 모어이다. 나에게 단 한 가지 운명이 있다면 모어다. 그건 선택 이전에 나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수많은, 이제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버린 언어가 모어였던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모어의 운명을 살아갔을까? 얼마나 많은 언어가 이 지상에서 사라졌는가? 언어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 언어의 발명자이자 사용자인 인간이 사라졌으며 그 인간이 바라보던 역사와 자연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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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아인 시인들을 사랑한다. 모어로 아무도 밟지 않은 영토에서 비틀거리는 시인들을 존경한다. 그 시인이 나보다 젊은 시인이든 아니면 이백 년 삼백 년 나이가 더 많은 시인이든 내 모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든 내가 읽지 못하는 언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든 고아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황홀해하고 내 못난 재능을 미워한다. 고아인 시인들의 시는 세대로도 무슨 주의로도 묶어낼 수가 없다.
허수경 지음, <가기 전에 쓰는 글들>(난다, 2024. 8. 8. 초판 7쇄 발행), 35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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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65장 17절부터 22절 말씀이다.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아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은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니, 그 안에서 다시는 울음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몇 날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없을 것이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을 것이다.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할 것이며, 백 살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받은 자로 여길 것이다.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
자기 언어로, 어머니께 배운 말로 사유하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베낀 것으로, 수입한 것으로, 주워들은 것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우물에서 생수를 길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시인의 말처럼,
“아무도 밟지 않은 영토에서 비틀거리기”를 수도 없이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우연을 사랑하면서, ‘홀로 서기’를 훈련해야
자기가 지은 집에 살 수 있고,
자기가 기른 포도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 향린 목회 37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