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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배움의 본질

by phobbi posted Nov 12, 2025 Views 22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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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1-12

2025. 11. 12.

 

합기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타다 히로시(多田宏) 선생님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내게 우치다(內田)군은 왜 합기도를 시작했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싸움을 잘하려고요라고 대답했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라 젊은 혈기로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어리석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는 분명히 전투력을 높이는일이 도장에서 수련하는 중요한 목적이었다. 나의 어리석은 대답에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런 동기로 시작해도 상관없겠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이 선생님은 진짜다. 선생님 밑에서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타다 선생님은 무도 수행을 하는 목적은 자네의 목적과는 다르네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자네가 내 밑에서 배우려고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배우게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분을 스승으로 모셔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잘 생각해 보면 비합리적인 판단이다. “나는 당신이 바라는 것과는 다른 것을 주겠다는 말씀을 근거로 이 사람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합리성 안에 멘토의 교육적 기능이 있다. 지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일단은 뭔지 잘 모르는채로 받아들이고, 언젠가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성숙의 단계로 도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생성 과정에 몸을 던질 수 있는 자만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번 배움이 무엇인지 안 사람은 그 후에 얼마든지, 어떤 영역이든 배울 수가 있다. 배움의 본질은 지식과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방법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메논>에서 소크라테스는 문제의 패러독스를 말했다. 우리는 문제를 내고 그에 답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하지만 문제라는 걸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제 자체가 역설적이다. 해법을 전혀 알 수 없는 문제는 애당초 문제로 의식할 수 없으며, 해법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해법을 어렴풋이 알지만 아직은 완전히 알지 못하는 문제를 말한다.

 

과학은 항상 가설을 세운 다음 이를 증명한다. 가설을 세워서 이를 근거로 실험을 하고 반증 사례를 발견하면 가설을 바꾼다. 이것이 자연과학, 인문과학을 불문하고 모든 과학적 사고의 기본이다. ‘가설이 지금 말한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아직은 완전히 알지 못하는 해법이다. ‘임시 진리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임시 진리가 결정적인 진리인지 아닌지는 좀 더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맞는지 안 맞는지 여부를 말할 수 없지만 시간을 들이면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지에 대한 지성의 개방성, 내가 이대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가질 수 있는 앎에 대한 분명한 기대가 멘토’, ‘문제’, ‘가설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 지음/박순분 옮김, <하류지향>(열음사, 2007. 10. 25. 초판 1쇄 발행), 18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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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교육이 어떠한가를 평가하려면,

학생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공부할 의욕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

자신의 무지를 깨닫기 위해 낯선 영역으로 자신을 던질 용기가 있는지,

한 번 발을 내디디면 변화의 순간까지 견딜 인내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수능에 만점을 맞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욕용기와 시간을 견디는 끈기가 중요하다.

 

이제 곧 수능 시험이라는데!

아직도 똑똑한 바보들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향린 목회 37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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