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06.
스마트폰은 타자가 자기 자신을 알리는 시선을 완전히 앗아감으로써 실제와 우리 사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차단한다. 터치스크린은 대면하는 상대인 현실을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만든다. 타자성을 박탈하고, 타자는 소비 가능해진다. 라캉에 따르면 이미지는 나를 바라보는, 사로잡는, 마법을 거는, 현혹시키는 시선을, 나를 자신의 궤도에 끌어들이고 내 눈을 사로잡는 시선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이미지 안에는 항상 시선을 가진 것들이 존재한다.” 라캉은 시선과 눈을 구분한다. 눈은 허구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 이미지는 시선을 방해한다.
얼굴은 거리를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그대(Du)이지, 가용한 그것(Es)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손가락으로 어떤 사람의 사진을 터치하거나 심지어는 옆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데, 이는 그것이 이미 시선, 즉 얼굴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라캉이라면 터치스크린에 고정된 이미지는 시선이 없는 것이라고, 나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눈요기로서만 작용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터치스크린은 그나마 시선을 투과시키는 영사막 스크린과도 구분된다. 반대로 디지털 화면은 우리를 현실로부터 완벽히 차단함으로써 아무것도 투과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평평하다.
~~
시선의 소멸은 늘어가는 자각의 나르시시즘화로 이어진다. 나르시시즘은 허구의 이미지를 위해 시선, 즉 타자를 제거한다. 스마트폰은 타자의 추방을 가속화한다. 디지털 거울은 후기 유아기 거울 단계의 재현을 유도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우리는 허구의 자아를 유지시키는 거울 단계에 잔류한다. 디지털은 현실, 허구, 상징이라는 라캉의 삼분법을 급진적으로 개조한다. 디지털은 현실을 해체하고, 공동체적 가치와 규범을 체화시키는 모든 상징을 허구의 것을 위해 점차 사라지게 한다.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침식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한병철 지음/최지수 옮김, <서사의 위기>(다산북스, 2023. 09. 15. 초판 1쇄 발행), 94-97.
=============================
중용(中庸) 6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공 선생이 말씀하셨다. “순임금은 참으로 큰 지혜를 가지셨구나!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시고, 가까이에서 들리는 말들도 잘 살피시고, 좋지 않은 점들은 가려주시고, 좋은 것들은 널리 드러내시네. 양끝을 모두 붙잡고 그 가운데서 균형을 잡아 백성들을 이끄셨으니, 바로 이분이 순임금이시로구나!(子曰: “舜, 其大知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
양면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능력, 양극단을 모두 끌어안고 그 가운데서 균형을 잡을 줄 아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執其兩端, 用其中於民).
과학문명이 인류에게 준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얻은 것이 있다면 반드시 잃는 것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스마트폰에서 연신 제공하는 눈요기 때문에
사람의 얼굴을 향하는 눈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가상이 주는 환상에 빠져서
실제로 겪는 몸의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계와 대화하면서 자기 안으로만 빠져들어 너를 잃어버리고,
우리를 상실하지 않도록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 향린 목회 36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