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27.
선생과 제자의 관계도 작품과 예술가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경의를 품는 대상은 ‘학생에게 유용한 지식을 전해주는 선생’도 아니고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선생’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옳은 의견을 말하는 선생’도 아닙니다.
우리가 경의를 품는 것은 ‘수수께끼 선생님’입니다. 혹은 ‘무지(無知)의 선생님’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 표현입니다만, 이 말은 무지한 선생님이 아니라 나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즉 나의 지(知)가 미치지 못하는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는 선생님을 가리킵니다. “선생님은 내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에만 제자들은 몸이 떨리는 경의를 느낍니다.
이를 위해서 선생이 실제로 탁월한 기술과 지식을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수수께끼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는 기술과 지식을 우리들에게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전하는 것의 가치를 이미 우리가 알고 있어서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교사는 ‘수수께끼를 품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우리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선생님, 그것이 ‘수수께끼 선생님’입니다.
우치다 타츠루 지음/박동섭 옮김, <스승은 있다>(도서출판 민들레, 2012. 7. 20), 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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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만큼 큰 선물과 행운은 없다.
훌륭한 많은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타츠루가 말하는 수수께끼 선생님은 정말 최고의 스승이다.
공자의 제자 안연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안연이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쳐다볼수록 더욱 높고, 파고들수록 더욱 단단하고, 바라보면 앞에 계시다가 어느덧 뒤에 계신다.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이끌어주시고, 학문으로 나를 넓혀주시고 예절로 나를 다잡아 주신다. (나는) 내 무능을 떨쳐보려고 해도 재능이 다했다. (선생님은) 우뚝 서 계시는데, (나는)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가 없구나!”(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論語』 「子罕」)
나에게는 이런 선생님들이 여러분 계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너무나 큰 선물이다.
- 향린 목회 35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