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9.
중국인들은 종교에 접근하는 방식에서도 변함없이 실용적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 다른 전통들이 가진 가장 좋은 점을 혼합했으며, 하나의 신앙에 엄격하게 매달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불교와 도교는 서로 만나자마자 영향을 주고 받았고, 결과적으로 두 종교는 서로 상대방을 배우면서 변화했던 것이다. 선불교(zen Buddhism)는 바로 그런 상호 변화의 결과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불교였다. 도를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기억하는가? 그렇게 얻기 어려운 도를 얻기 위해 선불교(Zen)는 마치 장난을 치는 것처럼 접근한다.
어떻게 하면 평화를 찾아 이 모든 갈망을 멈출 수 있을까요?
가르쳐 주십시오. 저 신성한 책들은 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며,
또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지요?
밖으로 …… 안으로 …… 밖으로 …… 안으로.
네, 뭐라고요?
고요하게, 아주 고요히 앉아서 …… 자신의 숨을 헤아려보라.
밖으로 …… 안으로 …… 밖으로 …… 안으로.
저는 제 문제를 가지고 당신을 찾았는데, 제게 숨쉬기 연습만
시키시는군요! 저는 뭔가 다른 것,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좋다. 이 들꽃을 조용히 바라보거라.
네! 뭣이라고요?
선불교는 도교의 놀이하는 정신을 배웠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성과 계산적 합리성에 의해 지배되는 문화는 선불교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리처드 할러웨이 지음/이용주 옮김, <세계 종교의 역사>(소소의 책, 2023. 10. 30. 초판 10쇄 발행), 147-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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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모든 종교는 만나서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 배우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둘째, 오늘날 가장 필요한 정신 중 하나는 바로 ‘놀이하는 정신’이다.
많은 종교인들이 자기 종교 정신만을 순수하게 지니고 싶어 하지만,
다종교 사회,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사유와 신앙, 삶은 다층적이고 중층적일 수밖에 없다. 여러 외래 종교가 오래 세월 스며든 한국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어떤 선택과 행동에 있어서 때로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때로 불교적으로, 때로 무속적으로, 때로는 유교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여러 종교 정신이 한 사람 안에 습합 되는 과정에서 좋은 점들이 상승 작용을 할 수도 있고, 되려 부정적인 모습들이 증폭될 수도 있다. 이것을 잘 살펴야 한다.
‘놀이하는 정신’은 각박한 세상에 가장 필요한 정신이다.
말에는 재치와 유머가 있어야 하고,
삶에는 놀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언제나 어린이들에게 놀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놀이는 이것을 저것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심각한 것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
놀이는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고, 삶은 기쁨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 준다.
그래서 무릇 사람은 놀 줄 알아야 한다.
- 향린 목회 35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