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뜻나눔

더불어 홀로

by phobbi posted Oct 17, 2025 Views 223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5-10-17

2025. 10. 17.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ers).”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자신의 희곡 출구 없는 방(Huis-Clos)(1944)에서 실토한 대사입니다. 그 작품은 아무런 적개심도 없는 세 사람이 단지 한 자리에 머무는 순간부터 타인의 시선과 개성의 충돌로 고통받는 인간 실존의 절망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삶으로써 그들과의 수평적이고 표준화된 삶에 동화됩니다. 나와 너의 고유명사는 사라지고, 익명의 그들이 독재하는 보편성의 신화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시선에 사로잡혀 자신의 본래성을 상실하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자기 기만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인간은 대상 자체를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구를 욕구한다는 헤겔이나 지라르(René Girard)욕망 이론을 새삼 반복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삶은 자연스럽게 인정투쟁의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한정된 재화에 대한 모두의 욕구는 경쟁의 논리를 부추길 수밖에 없고, ‘경쟁의 논리는 인정의 요구를 부추길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한 획일화된 삶 속에서 우리의 본래적인 자아는 타인의 눈총에 맞아 죽어 버립니다. ~~

 

인간은 타인의 욕구를 욕구한다.” 인간의 욕망은 대상 자체를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욕구하는 타인의 욕구를 욕구합니다. 우리가 명문 대학을 욕구하는 것은 타인들이 그것을 간절히 욕구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그들의 욕구를 욕구하는 것은 그들의 욕구를 대신 이루어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 높은 연봉을 받고 넓은 거실에서 화려한 삶을 살고 싶다는 비교급 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명예의 욕구지만, 나쁘게 말하면 지배의 욕구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인정투쟁의 경기장에 목숨을 건 검투사로 내던져져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그리고 과연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묻지 않은 채 그저 싸우기 위해 싸우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

 

현대의 능력주의(Meritocracy)’ 신화는 그러한 인정투쟁을 이상적인 삶의 문법으로 가르칩니다.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이상인지 캐묻는 것은 문명사의 금기이자 영업 비밀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화 속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좌절감과 열등감으로 괴로워하고, 인정받은 사람들은 고독감과 불안감으로 괴로워합니다. 더욱이 타인의 욕구를 대신 살아가는 자기상실과 그로 인한 우울의 문제는 현대인들의 가장 심각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는 만성적인 우울증과 불면증 환자들로 넘쳐 나는 거대한 정신병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인간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투박한 시도는 자연인 신드롬이나 은둔형 외톨이현상을 낳기도 했습니다. 타인이 지옥이라면, 거기서 벗어나는 직접적이고 간단한 길은 그들과 절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내면으로 도피하여 정신적인 평온과 만족을 추구하는 금욕주의의 행복을 닮았습니다. 그러한 은둔의 삶은 모든 욕망을 초탈한 부동심(apatheia)’ 혹은 해탈(Nirvana)’의 경지에 이른 수도사를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달관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달관은 여전히 우울합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끊으려다 자신의 삶까지 포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진우 지음, <역설의 변주: 불안에 맞서는 고요의 철학>(세창출판사, 2025. 10. 2.), 135-138.

 

======================================

 

인간은 관계 속 존재다.

관계를 떠난 나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관계적 존재임에도 자기만의 고유성을 지닌다.

누구나 창조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면서도 홀로 설 수 있는 힘과 용기가 필요하고,

홀로 살아가면서도 도움을 받고 도울 줄 알아야 한다.

같이 살지만 제 삶을 사는 법을,

제 삶을 살면서도 함께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진정한 내가 될 때, 너를 참되게 만날 수 있는 법.

그들의 말에 속지 말고 내 맘속에서 울려 나오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비교하지 않으면서,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으면서, 다름을 축제로 여기면서

그렇게 진실하게 나와 너가 만날 때, 꽤 괜찮은 우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348일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