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長空) 김재준 목사님

by phobbi posted Oct 15, 2025 Views 26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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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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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15.

 

호를 장공’(長空)이라 일컫는 사람이 세상에 살았다. 잠시 이 가운데서 그 사람의 생애와 됨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빈 그릇’, ‘빈 집’, ‘빈 들이라는 말에서처럼 비어 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어떤 책에 보니까 마암 궁빈한 자 복이문 텬국이 뎌의 나라이 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의 초가삼간이 텅 비어 있듯이 생각, 머리와 가슴이 궁빈하면 복이 된다는 말이다.

 

무엇이든 더 채우려 하고, 머리 속은 일만가지 생각과 타산으로 무겁고, 가슴 속은 오만가지 근심과 엇갈린 감정으로 잠잘 날이 없는 이 세상에서 마암 궁빈한 자가 복이다고 말한다.

 

그것은 왜 그런가? 장자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성질 못된 뱃사공이 배를 저어 가다가 다른 배에 부딪치게 되면 눈이 없느냐? 눈이 멀었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욕을 퍼붓지만, 부딪친 배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고 그냥 빈 배가 떠내려 온 것을 알면 그 성미 고약한 사람조차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생의 강을 빈 배처럼건너가라고 장자가 가르친다. ‘, ‘비움의 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노자의 글에는 도는 빈 그릇이다. 그러나 거기서 얼마든지 퍼내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배운 바 없는 데도 청산유수로 생수같은 말씀을 베풀고, ‘장공이 언제나 심심한 듯한 가운데 선비적인 잔잔한 말투와 글투로 사람을 헐렁하게 만들어 주는 슬기를 베풀었던 것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예수의 여덟번째의 복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도 소란을 좋아하는 성품의 소유자가 벌이는 것이 아니라, 칼로 찔러봐도 속에 이미 아무것도 없는 비움을, 공을 소지한 이만이 수행하는 것이다. ‘장공80여 평생이 이런 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 다음으로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길다, 길게길게 이어진다, 오래간다, 장구하다, 또는 구만리 하늘과 같은 장대함을 뜻한다.

 

어떻게 하면 이 장구함을 얻는가? 어떤 책에 보니까 그 아달을 주어 무릇 믿는 자는 망함을 면하고 길이 삶을 얻게 함이니라고 적혀 있다. 사람의 육신은 짐승과 마찬가지로 종당에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여기서 망함을 면하는 것이 길이 사는 것이란 구차스레 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또한 동양 성현의 말 속에도 역천자는 망하고 순천자는 흥한다는 것이 있는데 이도 육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하늘에 거역한 자는 어두운 망각에 쓸려가고 하느님의 아드님처럼 하늘 뜻에 순한 자는 천지가 길이길이 값진 기억으로 소장한다는 뜻이다.

 

노자는 말하기를,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길이 있다. 하늘과 땅이 능히 영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스스로 자신이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천지를 닮아 성인은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고, 그에게는 사심이 없는 탓으로 능히 그의 뜻이 성취되는 것이 아닌가?”고 한다.

 

장공김재준 선생은 자신의 일대 기록을 가리켜 못난 이의 기록”, “범용기라 부르면서 이러한 장과 공을 증언한다. 그는 범용기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못난 사람에게도 무조건 사랑하는 자녀가 있고 못난 것이 좋다는 허물없는 친구도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 애정 때문에 그 기록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적기 시작했다. 못난 이의 기록이라 해서 범용기라 이름했다.

 

진실로 겸허와 공이 넘쳐흐르는 고백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말하길 내 삶이 범용 그대로일지라도 땅의 미래에 묻어 놓고 언젠가 싹이 트기를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망각은 싫다. 특히 범용한 인간에게 있어서 말이다.” “하느님이 기억하시리라.” 이런 말로써 그는 장구함, 길이 삶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소년 시절을 유교 분위기에서 보냈다고 증언하는 김 목사님은 그리스도를 표적으로 삼아 불가적(佛家的)과 도가적(道家的)을 체현하셨다.

 

끝으로 이런 장구함과 비움을 이루신 이를 그리스도 곁으로 불러 가신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이 목가적시대(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적막한 시대)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이런 시국에 불러 가신 것을 생각하면 뱃속으로부터 슬픔이 솟구치지만, 동시에 마암 궁빈한 탓으로 천국의 싹을 틔우고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어 길이 삶을 얻은 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고, 그에게 가르침을 받게 한 이 은혜를 기억치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흙에서 한 생명을 일구어 구만리 하늘을 닮아간 이로 키워주신 하느님의 은혜와, 비움의 도()를 체현케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오늘도 동일한 빈 바람으로 우리 속에 찾아 오시는 거룩한 영의 역사가 그의 영혼과 우리들에게 함께 있기를 기원한다.

 

곽노순 지음, <예수현상학>(다산글방, 1991. 12. 1. 초판 발행), 186-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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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매한 인격을 지니신 어른들과 한 시대를 함께 하였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러한 어른들로 인해서 우리 사회와 역사는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던 것이다.

 

숨밭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작은 체구이셨으나 장공 선생님의 한 걸음은 마치 코끼리가 발을 옮기듯 육중하였다.”

 

- 향린 목회 34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