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07.
어쨌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신체 실감은 확실하지만 말로 잘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말로 하려고 고군분투하다 보면 인간의 머리가 좋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겁니다.
이치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뇌의 용량이 커진 거죠. 용량이 확대된 뇌를 가진 개체는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습니다. 인류가 태고의 어느 시점에서 그 사실을 발견했던 겁니다.
신(神), 공(空), 인(仁), 도(道)가 무엇인지 인간은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깊이, 철저하게 사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뇌 기능이 폭발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실감했습니다. 철학하는 습관을 지닌 집단이 철학하는 습관을 갖지 못한 집단보다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음을 오랜 시간에 걸쳐 보고 익힌 거죠.
인류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제기해온 것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 따라 지성 실천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집단으로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는 데에 철학의 인류학적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멀리 돌아왔는데요. 물음에 정답을 맞히는 능력보다 지성이 활성화되는 물음을 세우는 능력이 지성에게는 더 본질적이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용기론>(알에이치코리아, 2025. 05. 26.), 12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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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속적으로 지성 실천력을 활성하기 위해 물음을 물은 것처럼,
인류가 지속적으로 도덕 실천력을 활성하기 위해서도 물음을 묻고, 도전하는 일이 중요하다.
영적인 감각과 영성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손쉽게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오히려 답 없는 물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 향린 목회 33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