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불쌍히 여기는 마음(不忍之心)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공주가 갈대 숲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그것을 가져 오게 하였다. 열어 보니, 거기에 남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출애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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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초반의 이야기에는 크게 죽이려는 세력과 살리려는 세력 사이의 긴장과 대결이 있습니다. 죽이려는 세력에는 왕, 남성, 강대국의 백성들, 힘과 권력이 있고, 살리려는 세력에는 산파들, 여성, 어머니, 시녀들이 있습니다. 이 두 세력의 싸움의 결과는 놀랍게도 계속 예상을 빗나갑니다. 전력과 규모를 볼 때 이길 수 없는 싸움인데, 이상하게도 번번이 약자들의 생명이 유지됩니다.
위기에 빠진 아기를 건져내는 이가 하필이면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전부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파라오의 딸이라니! 이런 역설적 장면은 말없이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만듭니다. 갈대 사이에 상자를 숨겼는데 마침 바로의 딸이 내려왔다는 서술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마침”이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됩니다.
인간사(人間事)의 다층적 측면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민족의 관점에서 바로의 딸과 히브리 남자 아이는 원수지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림의 여성들은 민족을 넘어 세계적 연대를 일궈 나갑니다. 차별과 배제, 두려움에서 비롯된 혐오를 넘어서서 서로 살리는 생명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상자를 열었을 때, 아기는 울었고, 공주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내면으로부터 올라왔습니다. 공주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공주는 아버지 파라오가 내린 명령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딸에게 닥칠 곤경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이 모든 것을 덮습니다.
맹자는 곤경에 처한 이들을 보고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에서 사람의 사람다움을 발견하였고, 동아시아 전통은 바로 그 마음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져 있으니 그 마음을 밝혀 모든 사람이 함께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가장 큰 배움이라고 여겼습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큰 배움의 길(大學之道)을 이어나가야 할까요?
기도 : 하나님,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함께 아파하는 마음,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소서.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 속에서 당신의 섭리를 깨닫게 하시고, 거대한 장벽을 넘어서 연결되는 사랑의 힘을 굳게 간직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