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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고대 지배 체제와 성경

by phobbi posted Oct 06, 2025 Views 26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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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10-06

2025. 10. 06.

 

고대 지배 체제는 기원전 3000년대에 등장했다. 이 체제가 출현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중요한 발전이 있었다.

 

첫째는 대규모 농업과 잉여 생산이었다. 이는 철과 철제 농기구, 특히 쟁기의 발명과 대형 동물의 가축화 덕분에 가능했다. 둘째는 대규모 농업과 잉여 생산의 직접적인 결과, 즉 대규모 인구가 정착해 사는 도시의 등장이다. 이전까지는 농업을 통한 잉여 생산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유목 생활을 하거나 정원 수준의 소규모 농사에 의존해 작은 마을 단위로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 도시가 생겨났고, 이에 따라 통치 계층이 필요해졌다. 도시 사람들은 외부의 침입에 대비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어 계층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더 많은 사람이 도시 밖에 살고 있었고 도시는 음식과 재화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약탈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또한 도시 사람들은 도시 내부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들이 필요했다. 수천 명이 한 데 모여 살아가려면 조직과 통제가 불가피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권력과 부를 독점한 지배 계층이 등장했다. 도시가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고 작은 왕국들과 제국들이 생겨났다. 이 모두가 같은 천년기에 나타났다. ~~ 이 체제는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이 체제는 소수(군주와 귀족 계급)의 지배 아래 있었다. 권력과 부를 독점한 이들 상류층은 가족을 포함해도 전체 인구의 약 2%에 불과했다. 그 바로 아래 가신’(retainers)이라고 불리는 계층, 즉 지배 계층이 만든 체제를 운영하는 관리, 관료, 고위군 지휘관, 관리인, 서기관 등이 있었고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했다. 나머지 90% 이상의 일반 대중은 사회 체제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2) 이 체제는 경제 구조가 소수 지배층의 이익에 맞춰져 있었고, 대다수 사람은 착취당했다. 지배 계층은 경제 체제를 자신들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주물렀고 그 정도는 매우 심했다. 보통 매년 생산되는 부의 절반에서 최대 3분의 2까지를 이들이 차지했다. 이 부는 대부분 농민 계층, 즉 농업 노동자뿐 아니라 기타 육체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이들의 노동에서 나왔다. 그 결과 농민 계층은 만성적인 가난, 부족한 영양, 열악한 주거, 위생 관념이라고는 거의 없는 환경 속에 살아야 했고, 기대 수명도 지배 계층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3) 이 체제에서는 폭력이 수시로 일어났다. 지배 계층은 백성을 복종시키기 위해 폭력과 위협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전쟁이라는 폭력도 있었다. 당시에는 땅이 부의 주요 원천이었기 때문에, 전쟁은 곧 한 지배 계층이 다른 지배 계층의 땅을 차지하려고 벌이는 일이었다.

 

4) 이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종교였다. 왕들은 신의 이름으로 즉위했고, 사람들은 이들의 통치가 신의 뜻이라고 여겼다. 지배 계층의 종교는 세상의 질서, 곧 현재 사회 구조가 신의 뜻이라고 선언했다. 신이 세상을 지금 이 구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배 체제에 의의를 제기하는 이는 곧 신에게 불순종하는 이로 간주되었다.

 

성서의 세계, 성서의 배경이 되는 세계와 역사는 이랬다. 이 체제는 고대 이집트 세계, 이스라엘 왕정 세계, 바빌론을 시작으로 유대 민족을 계속해서 지배한 제국들의 세계였다. 예수와 초기 교회가 있었던 로마 제국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고대 지배 체제에 저항했고, 도전했다.

 

마커스 J. 보그 지음/민경찬·손승우 옮김, <마커스 보그의 고백: 기억에서 회심으로, 그리고 확신으로>(룩스문디, 2025. 07. 31.), 2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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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든 현대 세계든 인류의 역사에는 언제나 지배하려는 자들과

그 밑에서 신음하는 자들이 있어 왔다.

 

성서를 만든 사람들의 신앙은 이런 지배 체제에 맞서 저항하고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는 놀랍게 성서를 읽고 따른다는 사람들이

지배 체제와 한통속이 되어 버렸고, 그것에 저항하는 이들을 도리어 억누르려고 한다.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은 비상식적 통치를 하고 있는 트럼프의 강력한 우군이다.

이들은 트럼프를 내세워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고,

다른 이들을 적대시하며,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전 세계에 불고 있는 극우화 바람에 미국과 트럼프가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고,

한국도 그의 영향을 받은 극우주의 개신교인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과 정반대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늘 하나님의 뜻과 성서에 충실한 것이라 말한다.

개신교의 병이 너무 깊어, 과연 치료나 회생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 향린 목회 33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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