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01.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의 전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늙은 농부가 매일 성당에 들어와 몇 시간씩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비안네 신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늙은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분을 쳐다보고, 그분은 나를 쳐다보고, 이렇게 우리는 행복합니다.”
이런 상태는 우리가 먼저 어느 정도의 침묵을 배운 다음에만 가능합니다. 우선 입을 침묵시키는 데서 시작해서 감정의 침묵, 마음의 침묵, 몸의 침묵을 배우십시오. 그러나 처음부터 높은 데서 시작해서 마음의 침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입니다.
먼저 입에서부터 침묵하는 걸 배워야 하고, 그다음에는 평온하게 있기 위해 몸을 조용히 하는 걸 배워야 하며, 그다음엔 공상에 빠지지 않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어느 러시아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이올린 줄과 같이 너무 많이 눌러도 안 되고 너무 약하게 눌러도 안 됩니다.”
우리는 침묵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적으로 조용해졌을 때 묵시록의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라는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안토니 블룸 지음/김승혜 옮김, <기도의 체험>(가톨릭출판사, 2009. 9. 30.) 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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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우리 곁에 서서 문을 두드리지 않으신 적은 없다.
다만 우리가 너무 바빠서, 관심을 두지 않아서, 놓쳤을 뿐이다.
침묵하고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온갖 소리가 그쳐서 고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깊은 침묵의 바다가 먼저 존재하고,
소리가 하나씩 침묵의 바다 저 멀리서 생겨나 들려오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태초에 말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깊은 고요함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향린 목회 33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