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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예수의 하느님 나라

by phobbi posted Sep 18, 2025 Views 21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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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9-18

2025. 09. 18.

 

예수는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기본 메시지를 하느님의 나라라는 상대적으로 희귀한 정식으로 요약했다. 정확히 이 형태의 문구는 유다교 성경(=히브리어 성경)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제2경전에는 지혜서 10:10에 단 한 번 등장한다. 예수 시대 이전에 저술된 구약 위경에도 상당히 드물게 나온다. 그러나 이 문구는 모든 복음서 자료에서 매우 빈번하게 나오는데, 거의 모두 예수의 말에서 혹은 그의 말을 옮기는 사람들의 말에서 발견된다. 신약성경의 다른 책에서는 이 문구가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오는 편이다(사도행전은 예외다. 여기서 루카는 예수 시대와 교회 시대를 연결하려는 편집적 의도에서 이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가 비교적 희귀한 이 문구를 자신의 메시지 전체를 요약하는 지위로 격상한 것은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하늘 나라하느님이라는 단어의 잦은 사용을 피하기 위해 쓰인 경건한 대체 문구로서 신약성경에서 마태오복음서에만 나타난다)라는 문구로, 추상적 개념이나 특정하고 한정된 영역을 의도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나라’(또는 왕국)는 무엇보다 역동적이고 행동 지향적인 의미로, 곧 임금의 통치와 권능이라는 뜻을 지닌다. 예수는 이 문구를 사용하여, 세상과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피조물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 위에 정당한 통치를 확립함으로써 죄와 불의, 폭력의 현시대를 완전히 종식시키실 것임을 선포하였다.

 

이 문구가 고정된 상태나 장소가 아닌 신적 활동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예수가 자신의 현재 활동과 가까운 미래 모두에 대해 이 문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J. 콜린스/P. 마이어/캐롤린 오시크 R.S.C.J. 지음/송혜경 옮김, <역사적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교>(성서와 함께, 2025. 03. 05.), 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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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고 믿었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드러나는가?

우선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기에 예수에게는 미래보다는 현재를 사는 것이 중요했다.

마치 세상의 끝 날이 온 것처럼, 오늘만 살고 죽을 것처럼 살았다.

예수에게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은 아마도 그 옛날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그때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31:31-34. 새번역 성경)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드러내는 외적 표지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속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는 악한 자에게나 선한 자에게 똑같이 햇빛을 내리시고,

의로운 자에게나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 내면에 장착된 나라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넘치는 하나님 사랑을 지니기에 원수마저도 사랑하는 넉넉함의 나라다.

하나님은 자기를 비우셨다. 그래서 사라지셨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셔서 인간이 되셨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인간 예수가 벌인 넘치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그를 따르는 이들이 이어간 흘러넘치는 넉넉한 사랑을 통해서 계속 생성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31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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