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9. 14.
들으라 오 들으라
하늘이여
땅이여
그 사이에 소용돌이쳐 오르는 인간의 회리바람이여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비웃는다 겁낼 줄 아느냐
못될까 걱정이로다
오 나로 늘 새 끝을 들게 합소서
앞으로밖에 모르는 몰아치는 영이 이를 명한다
내 감히 자신 있어 지어먹는 맘에서랴
내 속에 분명 딴 뜻을 나는 듣노라
나의 나직하잠에는 거슬리는 뜻을
내 기독교에 이단자가 되리라
참에야 어디 딴 끝 있으리오
그것은 교회주의의 안경에 비치는 허깨비뿐이니라
미움은 무서움 설으고 무서움은 허깨비를 낳느니라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보다 더 위대하다
참을 위해 교회에 죽으리라
교회당 탑 밑에 내 뼈다귀는 혹 있으리다
그러나 내 영은 결단코 거기 갇힐 수 없느니라
- 함석헌, <함석헌 전집 6, 시집 수평선 너머>(한길사, 1988년 2월 20일 제4판), 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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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선생이 한국 전쟁의 막바지(1953년 7월 4일)에 쓴 대선언(大宣言)이라는 시의 일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두 거대 이데올로기가 맞붙던 시대 한복판에서,
그보다 더 큰 싸움을 내다보며 지천명을 지난 나이에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게 외친 소리.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함 선생 바라본 세계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 나는 한참 모자라지만
세차게 몰아치는 거룩한 영의 진보는 멈출 줄 모르고,
알량한 그리스도교에 갇힐 수 없음은 나에게도 명백하다.
앞으로밖에 모르는 영의 세찬 발걸음은
나직이 존재하고자 했던 함 선생을 몰아붙였다.
그로 인해 함 선생은
가장 튼튼한 것을 버리면서 약해지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자를 실망케 하면서 어리석다 말을 듣기도 하며
가장 사랑하는 자의 원수가 되어 슬픔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각오는 죽음 저편의 것이었다.
“내 다시 살아 있지 못하리라
거룩한 불꽃에 내 연한 얼굴 끄슬리고
독한 생명의 향기에 내 약한 가슴 녹아
풀무에서 튀어나는 쇠찌끼처럼
내 몸 쫄아들어 시체 되어 골 바닥에 굴러 떨어지리라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내 부탁한다
그때도 나를 쓸어안기를 부디 잊지 말라
내 그대들을 저버렸음
미움에서도 교만에서도 다 아니요
코카서스 높은 봉 만년 흰 눈 위에
즐겨 저주받은 자의 이름 들으며
영원한 고통의 불 술잔 기쁨으로 마시던
저 이방의 영웅같이
나도 나 모르는 막아낼 수 없는 영에 끌려
하늘에 올라가
영원의 빛 따 내려다 그대들 눈동자에 쏘아넣고
사라지지 않는 향기 받아다 그대들 코에 불어넣어
그대들로 이 역사의 법궤를 메고 요단을 건너느
거룩한 제사가 되게 하기 위해서임을
죽는 순간에도 오히려 그것을 빌며 그 빛을
그 빛을 먹고 죽었음을
그 말없는 시체를 안는 찰나
그대들은 맡아 얻으리라”
- 향린 목회 31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