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즐겨 이단자 되리라

by phobbi posted Sep 14, 2025 Views 24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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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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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9. 14.

 

들으라 오 들으라

하늘이여

땅이여

그 사이에 소용돌이쳐 오르는 인간의 회리바람이여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비웃는다 겁낼 줄 아느냐

못될까 걱정이로다

오 나로 늘 새 끝을 들게 합소서

 

앞으로밖에 모르는 몰아치는 영이 이를 명한다

내 감히 자신 있어 지어먹는 맘에서랴

내 속에 분명 딴 뜻을 나는 듣노라

나의 나직하잠에는 거슬리는 뜻을

 

내 기독교에 이단자가 되리라

참에야 어디 딴 끝 있으리오

그것은 교회주의의 안경에 비치는 허깨비뿐이니라

미움은 무서움 설으고 무서움은 허깨비를 낳느니라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보다 더 위대하다

참을 위해 교회에 죽으리라

교회당 탑 밑에 내 뼈다귀는 혹 있으리다

그러나 내 영은 결단코 거기 갇힐 수 없느니라

 

- 함석헌, <함석헌 전집 6, 시집 수평선 너머>(한길사, 1988220일 제4), 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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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선생이 한국 전쟁의 막바지(195374)에 쓴 대선언(大宣言)이라는 시의 일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두 거대 이데올로기가 맞붙던 시대 한복판에서,

그보다 더 큰 싸움을 내다보며 지천명을 지난 나이에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게 외친 소리.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함 선생 바라본 세계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 나는 한참 모자라지만

세차게 몰아치는 거룩한 영의 진보는 멈출 줄 모르고,

알량한 그리스도교에 갇힐 수 없음은 나에게도 명백하다.

 

앞으로밖에 모르는 영의 세찬 발걸음은

나직이 존재하고자 했던 함 선생을 몰아붙였다.

그로 인해 함 선생은

가장 튼튼한 것을 버리면서 약해지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자를 실망케 하면서 어리석다 말을 듣기도 하며

가장 사랑하는 자의 원수가 되어 슬픔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각오는 죽음 저편의 것이었다.

 

내 다시 살아 있지 못하리라

거룩한 불꽃에 내 연한 얼굴 끄슬리고

독한 생명의 향기에 내 약한 가슴 녹아

풀무에서 튀어나는 쇠찌끼처럼

내 몸 쫄아들어 시체 되어 골 바닥에 굴러 떨어지리라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내 부탁한다

그때도 나를 쓸어안기를 부디 잊지 말라

내 그대들을 저버렸음

미움에서도 교만에서도 다 아니요

코카서스 높은 봉 만년 흰 눈 위에

즐겨 저주받은 자의 이름 들으며

영원한 고통의 불 술잔 기쁨으로 마시던

저 이방의 영웅같이

나도 나 모르는 막아낼 수 없는 영에 끌려

하늘에 올라가

영원의 빛 따 내려다 그대들 눈동자에 쏘아넣고

사라지지 않는 향기 받아다 그대들 코에 불어넣어

그대들로 이 역사의 법궤를 메고 요단을 건너느

거룩한 제사가 되게 하기 위해서임을

죽는 순간에도 오히려 그것을 빌며 그 빛을

그 빛을 먹고 죽었음을

그 말없는 시체를 안는 찰나

그대들은 맡아 얻으리라

 

- 향린 목회 31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