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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묵상

77. “, 가고 말고! 내가 죽기 전에 그 아이를 보아야지!”

 

그들은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렀다. 그들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이집트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야곱은 정신이 나간 듯 어리벙벙하여, 그 말을 곧이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셉이 한 말을 아들들에게서 모두 전해 듣고, 또한 요셉이 자기를 데려오라고 보낸 그 수레들을 보고 나서야, 아버지 야곱은 비로소 제 정신이 들었다.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내 아들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니! , 가고말고! 내가 죽기 전에 그 아이를 보아야지!” 하고 이스라엘은 중얼거렸다. (창세 45: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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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가진 모든 동물은 처음 태어나서 젖을 주며 자기를 길러 준 그 따뜻한 가슴을 잊지 못합니다. 생명이 거기에 달렸고, 또 그를 통해 세상을 만나며, 앞으로 살아갈 모든 자양분을 얻습니다. 모든 어미의 눈에 새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자기애(自己愛)보다도 강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어미와 새끼 사이의, 부모-자식 간의 애틋한 사랑은 무엇보다 고귀하고 질기고 강렬합니다. 공자는 이런 심미적 감수성을 가득 담은 사랑을 인()이라는 개념으로 잡아내어 세계를 이끄는 동력을 삼고자 했습니다.

 

죽을 줄로만 알았던,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아이!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생명은 대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한 생명을 다른 생명으로 대신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죽은 아벨을 대신하여 셋을 주었다 하더라도 하와 마음의 빈 구석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욥보다 먼저 간 자녀들을 대신해서 아들을 일곱이나 주시고, 세상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미모의 딸을 세 명이나 더 주셨지만, 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생명은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다는 그 말에 한동안 얼이 빠져 있던 야곱이 이제 정신을 차리고 말합니다.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 , 가고말고! 내가 죽기 전에 그 아이를 보아야지!”

 

민족의 거대한 죄악인 전쟁 때문에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아야 했던 이 땅에 수많은 생명들! 그들을 살리는 길은 빨리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로 될 수 없다면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죽기 전에 보아야 하니까요! 죽어도 한이 남지 말아야 하니까요!

 

기도: 하나님! 하늘은 철책선이 없고, 들판의 노루는 마음껏 뛰어다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는 우리는 금을 그어 놓고 한 가족이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75년 넘게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하루속히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게 하여 주소서. 온 국민이 애쓰고 힘쓰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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