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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창조절에 대하여

by phobbi posted Sep 08, 2025 Views 31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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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9-08

2025. 09. 08.

 

창조절은 많은 교단에서 잊힌 절기이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절기다. 전통적인 교회력은 성령강림절 이후, 삼위일체주일을 지낸 뒤 긴 비축제기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 시간에 삼위일체의 균형과 의미를 되찾으려는 시도가 있다. 성육신과 부활이라는 예수 이야기에 집중된 교회력에 성령과 성부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재구성이다. 성령강림을 하루의 축제로 두지 않고 8월까지 늘려 성령의 시간으로 확장하고, 9월부터는 창조절을 도입해 성부의 시간을 열었다. 9월 시작은 비잔틴 제국이 창조를 기념하며 새해를 9월에 시작했던 전통에서 착안했다. 그리하여 어떤 교회력은 대림절이 아니라 창조절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는다.

 

위와 같이 삼위일체력을 지키지 않더라도, 세계 교회는 창조절을 따르며 기후위기 앞에서 생태신학적 사유를 예배와 윤리의 실천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91일부터 104(성프란시스코 축일)까지 세계창조절준비 위원회에서는 창조절에 활용할 수 있는 예배와 교육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홈페이지(bit.ly/45w4UM1)에서 한글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탄소금식, 생태적 예전, 순환과 절제의 삶이 이 절기에서 살아난다. 지구적 위기 앞에서 뜻을 함께한 교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창조행렬에 동참하며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인간의 탐욕으로 파괴된 세계를 회복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창조절은 단지 태초를 회상하는 시간이 아니다. 이 절기는 하나님이 마침내 이루실 새 창조를 기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창조절은 어떤 교단에서는 첫째 절기이지만, 또 다른 교단에서는 마지막 절기가 된다. 이런 이중적 위치는 창조가 우리의 출발이자 완성임을 상기한다. 그런 면에서 창조절은 처음이자 마지막, 알파이자 오메가의 절기다. 우리는 이 절기를 통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창조되었는지를 기억하고 그것이 얼마나 무참히 훼손되었는지를 직면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성령강림절을 고백한 성령의 도우심 아래 하나님이 다시 빚으실 새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이렇게 창조절은 다가올 대림절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본다.

 

이광희, 교회력, 예전적 시차: 교회력의 의미와 실천, 기독교사상 2025. 09. 통권 801(대한기독교서회, 2025. 09. 0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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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과 더불어 창조절이 시작되었다.

좀 더 생태적으로, 더 검소하게, 절제하며

우리의 후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의 시대에 인류의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태계의 회복일 것이다.

신학도 구원 신학에서 창조 신학으로 더 폭넓게 나아가야 하리라.

 

- 향린 목회 30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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