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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어려움에도 작은 발걸음을 떼며

by phobbi posted Sep 06, 2025 Views 22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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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9-06

2025. 09. 06.

 

다시 말해 현실은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내가 만약 현실에서 지독한 어려움에 빠졌다면 그 고통은 절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한 지경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본래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습니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본다면, 내가 하는 모든 수고와 실행은 모두 플러스가 되는 행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려움을 정확하게 목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고통 속에 있는 내담자와 상담을 할 때 탐색하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그중 열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1. 이 어려움이 온 이유가 무엇인가?

2. 언제부터 어려움이 내게 닥치기 시작한 건가?

3.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4. 어려움에 빠지게 된 내 실수는 무엇인가?

5. 내가 이 실수를 통해 깨달은 바가 무엇인가?

6. 내가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서 어려움의 이야기를 손자녀에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극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7. 나는 어떤 존재이기에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도 한 걸음을 옮기려고 하는가?

8.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유사하게 극복해냈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

9. 지금 내가 당장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 30분 있다면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10. 내가 이 일을 할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어떤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

 

내 집이 엉망진창이고 내 마음도 뒤죽박죽이라면 일단 내 발 밑에 있는 쓰레기부터 치우는 것입니다. 고립감이 너무 크다면 밖으로 나가봐야 합니다. 밝은 햇살을 쐬고 나무와 꽃을 봐야 합니다. 숨이 안 쉬어진다면, 그래서 패닉이 몰려온다면 큰 호흡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위축되기 시작한다면 의도적으로 몸을 크게 뻗어봐야 합니다. 외로움이 크다면 연락처를 보면서 나와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봐야 합니다. 찾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연락을 해봐야 합니다.

 

작은 어려움을 정확히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작은 발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고통 속의 의미를 창출하는 작은 발걸음을 비로소 변화라고 부릅니다.

 

이헌주 지음, <AI를 압도하는 내면 경쟁력>(라이프앤페이지, 2025. 06. 02.), 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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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나 자신이 사는 것이지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따라서 겪어야 하는 삶의 모든 경험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통과 불행은 피하려고 하고,

행운과 기쁨 가득한 삶이 이어지길 바라지만,

반대인 것 같은 이 둘은 같은 것의 다른 면일 뿐이다.

 

노자 도덕경 13장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을 받든지, 욕을 먹든지 늘 놀란 듯하고,

큰 근심덩어리를 자기 몸과 같이 귀하게 여겨라!

 

왜 사랑을 얻든 욕을 당하든 놀란 듯이 하라고 하는가?

사랑은 곧 내리막길로 가기 마련이니,

얻어도 놀란 듯, 잃어도 놀란 듯 해야 한다.

이것을 일컬어 사랑을 받으나 욕을 당하나 늘 놀란 듯 하라고 한 것이다.

 

왜 큰 근심덩어리를 몸처럼 귀하게 여기라고 하는가?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까닭은 내가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가 몸이 없다면 나에게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그렇게 몸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천하를 귀하게 여기면 가히 천하를 맡길 수 있고,

그렇게 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천하를 사랑하면 가히 천하를 위탁할 수 있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 향린 목회 30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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