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9. 02.
서경식_ 언어의 순수성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라는 말을 쓸 때도, ‘뜻’이라는 말에 대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와 (저처럼) 그 말을 우선 일본어로 번역해 이해한 다음 다시 ‘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모어의 자명성·필연성을 무의식적으로 전제로 삼으면, 관념적으로는 언어의 순수성을 부정하되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김상봉_ 그 말씀에 담긴 우려를 저도 인정합니다. 비단 언어뿐만 아니라 지금 제가 수행하는 철학적 작업에도 그런 위험이 있지요. 제가 선생님을 만나면서 제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문제들이 실은 바로 그 부분이에요. 내가 하는 철학의 방법이 폐쇄적이지는 않는가 하는 문제지요. 우리의 역사나 언어 (민중의 일상 언어, 말하기에 따라서는 ‘순수 한국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언어)로부터 어떤 철학적 사유를 길어내겠다는 시도가, 타자와의 만남을 형상화하는 데 적절하겠는가 굉장히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 역사와 언어들 (그중에서도 민중적인, ‘순 우리말’이랄 수 있는 것)에 숨겨진 어떤 가능성을 어떻게든 이끌어내는 것,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가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철학적 자기인식의 과제라고 한다면, 다른 한편에선 그러한 자기 인식이 과연 얼마나 개방성과 더불어 갈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도 있는 것이지요.
아직 최종적인 답이 없어요. 제가 계속 머물러 있는 자리입니다. 한 말씀만 더 보태도 된다면, 이것이 식민지 역사로부터 출발해서 철학을 하는 사람들 앞에 놓인 공통적인 고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 역사와 언어를 포기해버리면 제국주의적인 보편에 포섭되어버리고 그러지 않고 거꾸로 ‘자기’ 운운하면서 그것에 집착하게 되면 배타적인 개별성에 함몰되어버리고, 이쪽저쪽 어느 쪽도 아닌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제 딴에는 고민을 한다고 하면서 서로주체성 이야기를 했는데 현실적으로 언어라는 장벽에, 역사라는 장벽에 부딪히니까 이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서경식_ 너무나 솔직한 말씀이십니다. 선생님께서 고민하고 계시는 문제는 철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로 다른 여러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제로 고민하고 고뇌하고, 또 함께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잘못된 보편주의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로부터는 ‘너는 너무 개별적이다. 너무 민족주의적이다’라고 비판을 받게 되고, 또 고유성에 집착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너는 너무 보편주의적이다’라는 비판을 듣게 되지요. 그 경계선에 서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고 있는 것이 ‘우리’가 아니겠습니까?
서경식·김상봉 지음, <만남>(돌베개, 2008. 4. 30. 초판 2쇄 발행), 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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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과 김상봉 선생의 대담집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철학이란 학문에 대한 자기 인식에 대해 깊이 성찰하시는 김상봉 선생의 고민처럼,
이 땅에서 신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은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대화다.
학문이란 보편성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이며,
가장 보편적인 가능성을 찾아가는 숱한 노력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편이 아닌 것이 보편인 척 둔갑하고 등장할 때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나 위선이 되고 만다.
이 땅의 역사에서 그래도 근래에 수입된 기독교 신학 동네의 풍경은
늘 몰이해, 위선, 강요나 미성숙 사이를 오가곤 했던 것 같다.
뭘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고, 몰라도 되는데 모르면 너무 부끄럽고,
알아야 하지만 몰라서 모르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 참 많았다.
제 속에서 익지 않았는데도 떠들어야 하고,
그렇게 떠들어도 말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가 어차피 잘 몰라서,
그렇게 그냥 허송한 세월도 꽤 길었다.
언젠가 일본에 있는 한국인 신학 동지와 나누던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신학에 있어 우리의 과제는 일본 사람들이 번역해 준 말이 아니라,
다시 우리말로 신학의 모든 용어로 재정립하는 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우리 맥락에서 새롭게 뿌리내리며 적실하게 이해되는 신학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곱씹어 다시 세계 신학계에 내어놓을 날이 언제나 올 것인가?
목회를 마치는 날부터 주어지는 시간을 두고 아주 가끔 여러 상상과 기대를 품곤 하는데,
그때 도전할 만한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 향린 목회 30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