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24.
나는 이제 ‘성서의 명료함’이라는 관념을 포기하고, 어떤 문제에 관해서든 성서가 분명한 무언가를 가르친다고 말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서에서 진정 무언가를 배우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모호함에 익숙해지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규율에 기꺼이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제 “성서는 ...을 분명히 가르친다”는 말을 들으면 경계하자. 물론 우리는 손쉽게 성서를 대리인으로, 선생으로 곧잘 의인화하곤 한다. ~~
그러나 오늘날 상황에서 “우리가 특정 공동체의 전통 아래에 서 있으면 성서로부터 ...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거나 혹은 “성서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면 이러한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대신 “성서는 ...을 분명히 가르친다”라고 말하면, 이는 사실상 성서를 자신들이 하는 주장의 대리인으로 삼는 것이며, 실제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권위의 위치를 감추는 것이다.
모호함을 고백하는 것이 더 낫다. 분명 이렇게 모호한 이유 중 일부는 (루터와 칼뱅이 말했듯)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알고 부분적으로만 예언하지만,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이 끝날 것”(1고린 13:9)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웨인 A. 믹스 지음/김경민 옮김, <그리스도는 질문이다>(비아, 2024. 1. 25.), 19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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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과 세계는 늘 변화하고,
또 모든 것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어떤 사람도 전체를 볼 수 없고, 모든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호함과 불확실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것이 불안과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많은 이들은 안정을 획득하고자 명확한 것들을 찾고,
종교에서는 진리의 이름으로 이런 것들이 작동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성서의 말씀을 들먹이면서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이라며 모든 논쟁을 종결하고,
따를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생 성서를 연구한 이 신약학자는
자신의 마지막 책에서 “성서는 ...을 분명히 가르친다”라고 말할 때,
바로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의 권위만 높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친다.
성서를 가지고 자기주장을 하지 말고,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성서를 가지고 이렇게도 말하시고, 저렇게도 말하신다.
오직 한 가지로만 말한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자.
인간 언어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 말씀은
비유나 은유, 또는 상징으로만 겨우 들려지는데,
비유나 은유, 상징은 뜻이 넘쳐난다.
넘치는 뜻을 축제로 여길 줄 알고,
거기에서 때에 맞는 말씀을 붙잡을 줄 아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참된 신앙은 자신의 안정과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성서를 들먹거리며 명석판명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함과 불확실성 속에서 겸손한 자세로
그때그때 물어가면서 최선을 다하고, 주님의 은총과 선물을 기다리는 것이다.
- 향린 목회 294일차